제8화 신바드의 모험(85)
공주와 내가 그렇게 한 덩어리로 엉겨붙은 채 울고 있을 때 그때까지도 우리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참을성 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신랑이 나의 발 끝에 입맞추며 말했습니다.
『오! 성자님, 실로 성은이 망극합니다』
그제서야 나는 번쩍 정신이 들어 공주에게서 떨어져 누웠습니다. 공주에게서 떨어져 누우면서 보니 그녀와 나는 온통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허벅다리와 아랫배에는 온통 빨간 피가 흥건히 흘러 있었습니다. 신부가 흘린 피를 보자 신랑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 고마우셔라! 마침내 성자님께서는 저와 저의 아내를 사악한 눈길로부터 막아주셨군요』
이렇게 말한 그는 하얀 비단 수건 한 장을 꺼내더니 처녀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그때 내 사랑스런 공주의 피를 닦고 있는 그 사내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피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건 가득히 빨간 처녀의 피를 묻힌 신랑은 나와 공주의 손에 입맞춘 뒤 서둘러 침실을 나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의 친척들에게로 말입니다.
신랑이 나가고 이제 우리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공주는 다시금 와락 나의 품에 안기며 속삭였습니다.
『오, 성자님! 당신은 마침내 저를 여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아세요? 저는 흡사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신부는 그 맑고 아름다운 눈으로 멀거니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녀의 그 미소는 생전 처음으로 쾌락을 맛본 처녀의 미소였습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나 또한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날이 밝으면 우리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나간 뒤 날이 샐 때까지의 시간은 우리 둘만의 시간이었습니다만, 나는 더 이상 여자를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이별을 앞두고 쾌락을 탐한다는 것이 불경스럽게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나는 내 팔을 베고 누운 그 사랑스런 공주의 귓바퀴며, 코며, 입술이며, 이마며, 뺨이며, 턱을 끊임없이 어루만지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 감미로우면서도 슬픈 밤은 마침내 새벽에 다다랐습니다. 날이 밝고 밖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우리는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공주 또한 이별이 아쉬웠던지 다시 한번 와락 나에게 안겨왔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입술에 나는 뜨겁게 입맞추었습니다.
그때 신랑이 들어왔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옷을 입혀주고는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침실을 떠나는 공주는 아랫도리에 힘이 없는 듯 걸음을 허둥거렸습니다. 아랫도리를 허둥거리는 그 귀여운 공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말이지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잠시 후 내시가 와 나에게 목욕을 하라고 했습니다만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내 몸에 묻어 있을 공주의 피와 향기를 나는 씻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글: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