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무소신 눈치보기 얼룩진 신한국 경선

  • 입력 1997년 6월 30일 20시 17분


▼「40대기수론」이 등장했던 1970년 신민당(新民黨)대통령후보 지명전. 그때도 후보경쟁에 나서겠다고 한 사람은 당초 지금 신한국당 경선주자수와 마찬가지인 7명이었다. 그러나 그해 9월 전당대회에서는 金泳三(김영삼) 金大中(김대중)씨가 맞붙어 1차투표에서는 김영삼씨가 앞섰으나 과반수 획득에 실패, 2차투표에서 김대중씨가 역전승을 거둬 대통령후보가 됐다. ▼그 무렵에는 당내 각 계보 실력자들이 사실상 대의원들을 거느리고 있을 때여서 그들의 담합에 따라 대의원들의 표가 몰려다녔다. 당시 김대중씨가 승리한 것도 2차투표에서 李哲承(이철승)계가 지원한 결과였다. 이처럼 몇사람의 실력자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계보정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당내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어렵다. 당원들의 자발적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신한국당 경선을 보면 아직도 대의원들을 무슨 거수기 정도로 여겨 무조건 장악하려드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대의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심야유회 등 빼돌리기 수법으로 다른 주자는 아예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후보추천서에 필요한 대의원들의 도장을 일괄 보관하는 주자도 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러고도 과연 민주경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후보추천 명단은 공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의원들을 더욱 움츠러 들게 한다는 관측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지구당은 주자 7명에게 대의원을 골고루 배분하기도 하고 어떤 지구당은 대의원 전원이 추천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무소신과 눈치보기가 지나치다. 신한국당 대의원들은 자신들이 당의 주인이자 민주경선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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