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의 눈]선동렬과 「20세이브」

  • 입력 1997년 6월 23일 20시 04분


지난해 11월29일 김포공항 제2청사. 여행가방 두개만 달랑 든 채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입국장을 빠져 나오던 선동렬. 그로부터 반년 뒤인 지난 21일 일본 하마마스구장. 「최단기간 20세이브」의 기록을 세운 뒤 마운드에서 두팔을 번쩍 치켜든 선동렬. 이 두 장면에서 필자는 지난 겨울 일시 귀국한 그와 광주행 비행기안에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떠오른다. 『일본야구를 조금은 얕잡아 본 게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니 분석적인 일본야구에 대해 적응하기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흔들렸어요』 그의 말에서 필자는 「프로의 마지막 승부처는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어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었다. 스포츠에서의 승부는 크게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눠진다. 전자는 기량의 차이나 순간적인 컨디션에 따라 갈라지지만 후자는 그렇지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승부란 곧 자기와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이길 비법은 정신력뿐이다. 선동렬이 올시즌 구위는 달라진 게 없는데도 지난해에 비해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올시즌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주니치 호시노감독은 『지난해 캠프때는 선동렬이 금방 눈에 띄었다. 항상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캠프에서는 무리속에 어울려 있는 그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일본야구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선동렬에 대해 한가지 더 칭찬해야 할 게 있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을 마다하고 야구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절제와 결단의 미학」을 몸으로 실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일성〈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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