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유성/「에코페미니즘」의미

  • 입력 1997년 6월 19일 08시 02분


지금 세상은 엉망이고 사회는 온통 헝클어져 있다. 어디서부터 추슬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삶의 바탕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다운 삶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러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잦은 「주의(主義)」에 넌더리가 날 정도로 치였다. 이것은 대개 그 앞에 오는 말만 중요하다는 편협한 사상이고 억지와 강변으로 물든 실천이었다. 이제 그런 주의가 아닌 전혀 다르고 새롭고 구체적인 전망과 지침을 찾아 따르고, 삶의 실천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요즈음 들어 부쩍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이다. 「생태주의적인 성평등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이 주의는 다르다. 생명의 가치, 자연생태계라는 넓디 넓은 온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며, 동시에 고른 사람의 삶을 살리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또 망가뜨려 온 남성중심 서구중심 이성중심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뒤바꾸는 실천의 지침이기도 하다. 곧 상생(相生)과 화쟁(和諍)의 뜻으로 생태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삶을 모두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 실천의 자리는 삶의 모든 현장이다. 이를테면 먹을 것을 건강하게 나누자는 생활협동조합운동부터 공동육아와 같은 육아협동조합,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 교육다운 교육을 되살리려는 숱한 대안교육의 운동들이 이에 바탕한 것이다. 먹을 것을 가려 먹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개인적 욕심뿐 아니라 이를 넘어서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을 함께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아이들을 핵가족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열린 공간에서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의 노력, 사람을 만들기보다는 사람을 잡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굳어진 제도교육의 틀을 벗어나 사람을 가꾸고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안교육의 노력….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력 재생산의 장으로 축소된 가족을 살아있는 삶의 자리, 생명을 되찾는 안온한 품, 그리고 평등한 인간관계의 실천의 장으로 바꾸어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또는 사회의 여러 조직이나 모임 안에서 생명가치를 존중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가꾸며 이를 꽃피우는 다양한 노력들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사랑까지도 이러한 생명존중과 평등한 인간관계의 원칙에 따라 맺고 가꾼다면 혼란과 폭력에 시달리는 우리의 성문화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한편으로는 가장 넓고 깊은 가치를 담은 사상이면서 온 삶의 자리를 아우르고 그러면서도 가장 가까운 삶의 자리에서 이를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유성(서강대 교양과정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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