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석좌교수로 21일 한국을 방문하는 레흐 바웬사 전폴란드대통령(54)의 이번 방문은 지난 94년 12월 대통령재임당시 국빈방문에 이어 두번째다. 그는 대통령직을 떠난후 생활비가 모자라 그단스크조선소에 출근까지 했으나 문을 닫는 바람에 그만두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웬사 전대통령은 자유노조(솔리데리티)의 본거지였던 그단스크 시내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다음은 바웬사 전대통령과 가진 인터뷰 내용.》
―당신은 대통령 퇴임후 조용히 지내다 최근 캐나다 터키 헝가리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또 지난 4월 중부 유럽의 우파보수세력 지원을 위한 「중구민주포럼」의 명예회장에 이어 오는 6월 개최될 뉴한자동맹회의 명예위원장을 맡았다. 이같이 활발한 대외활동의 배경은….
『나는 자유노조의 지도자로 공산세력 퇴치활동을 펼쳐 결국 공산정권을 붕괴시키는 승리를 거뒀다. 폴란드는 지금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안정돼 있고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 나는 젊기 때문에 이같은 업적 외에 다른 무엇을 하고 싶어 세계로 눈을 돌려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세계에 아직 남아있는 공산 잔재들을 청산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후 「충격요법」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자유민주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가격 및 외환 자율화, 국영기업 민영화, 보조금삭감 등의 조치를 한꺼번에 취하자 일시적으로 국민의 생활수준이 떨어져 불만이 높아졌으나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드는 것도 있으나 종합적으로 볼때 폴란드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다. 작은 어려움들은 민주주의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문제인만큼 시간을 갖고 해결하면 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북한의 김일성처럼 찬양받는 독재형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론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나는 대선에서 패배했으나 내가 만든 민주적 틀 속에서 이루어진 만큼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나의 혁명은 올바른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민이 원치 않을 때, 또 체제에 적합하지 않을 때 지도자는 떠나야 한다』
―폴란드의 국가목표인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입에 대한 견해는….
『세계에는 단일국가가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 경제구조 블록화 같은 문제들이 있다. 폴란드도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EU에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경제수준이 현재 EU회원국과 차이나기 때문에 유리한 상황을 기다려 비슷한 수준이 될 때 가입해야 한다. NATO는 거대하고 막강한 군사기구이며 큰 경제부담없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므로 가급적 빨리 가입해야 한다』
―대통령직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내 자신이 평가하기는 힘들다. 나는 혁명을 주도했으나 「바웬사〓민주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민주체제의 정착과정에서 잘못한 일도, 잘못된 일도 있었다. 능력부족도 있었고 상황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다. 평가는 역사가의 몫이다』
―조선소의 전기공, 자유노조지도자, 대통령중 어느 것이 가장 힘들었나.
『(미소를 띠며)모두 어려웠다. 그러나 상황과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어려움은 나의 성격과 신앙심으로 극복했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은 죽어서 관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자서전 「희망의 길」에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언급했는데….
『지도자의 종류는 많다. 나는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혁명세력의 리더이나 이는 과도기에 필요한 지도자이다. 민주화가 정착되면 교섭력을 바탕으로 지속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정직과 헌신을 자질로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자질의 지도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아니다. 교활하고사기성향을 지닌지도자도세계에서찾아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가 폴란드 국영자동차회사였던 FSO를 인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한국기업의 진출에 대한 생각과 양국관계 강화방안은….
『나도 대우자동차를 지원했다. 한국기업의 활동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폴란드의 EU가입후 진출은 힘든 만큼 시간적 한계를 생각해 한국기업의 투자는 빨라야 한다. 폴란드도 러시아와 독일 등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제삼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며 한국은 이같은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나라다. 폴란드는 한국과 장기적으로 함께 발전하는 대등한 파트너관계를 원하고 있다』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정권과 한반도통일에 대한 전망은….
『북한정권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단지 그동안 자행한 악행이 너무 많아 지도부가 처벌을 두려워해 힘겹게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참한 북한을 구원하는 길은 통일을 서두르는 것인데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활동 폭에 한계가 있는 만큼 책임은 한반도통일에 영향을 끼치는 세계강대국들이 져야 한다』
―고려대 석좌교수로 한국에서 강연하게 되는데 강의할 내용은….
『유럽 아시아 북미 등의 지역블록화현상을 포함, 국제사회의 추세와 문제점은 물론 남북의 대치상황과 통일전망 등 한국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예정이다. 폴란드 민주화의 생생한 경험담도 포함될 것이다. 참석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절반은 강연, 절반은 질의에 대해 즉석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추진력을 얻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으나 젊은이들은 너무 무관심하다. 정치에 적극 참여해 잘못을 개선해야 밝은 내일이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대담=그단스크 김상철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