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동시대 게임」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오에 겐자부로 지음/고려원/7천5백원) 난해하다. 신화와 역사의 양축을 뼈대가 분해된 스토리의 구조 위에서 죽음과 재생이라는 모티브와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을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설은 전체적으로 헝클어져 보인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그로테스크한 행각이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히고 있다. 언뜻 지구의 종말 뒤에 방사능 물질에 기생하는 돌연변이 생물군들을 연상시킨다. 소설은 「내」가 쌍둥이 여동생 앞으로 쓴 여섯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편지에 나오는 「파괴자 놀이」는 전후 일본사회의 불안함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놀이에 참가한 아이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일제히 대변을 본다. 골짜기의 개들이 일제히 몰려와 그 똥을 먹으면서 놀이에 합류한다. 이중 한 아이는 고기를 먹으려고 여관에서 키우던 돼지를 도살하려고 덤벼든다. 작은 칼이 돼지의 콧등을 스치지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정작 돼지는 피를 흘리면서 가해자인 아이를 따라 나선다. 파괴자 놀이는 운명을 거역하려는 나와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다. 파괴자 놀이는 내가 쌍둥이 누이를 등뒤에서 강간하는 사악한 행위로 이어진다. 파괴함으로써 운명과 맞서려는 나의 거역은 그러나 기실 「운명의 각본」에 의한 것임이 드러난다. 누이는 뒤로 한팔을 내밀어 나를 부드럽게 쥐어 금세 사정시킴으로써 파괴의 기도를 무산시키고 만다. 그리고 『오늘 일은 파괴자 놀이와 비슷했지?』라고 묻는다. 〈이기우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