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앙선관위 매운 맛 보여라

  • 입력 1997년 5월 12일 20시 16분


대선 예비주자들이 벌써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무시한채 멋대로 행동하고 있어 과연 공명선거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선관위는 여야 대선주자 12명에게 23개 사조직에 대한 자료를 제출토록 요구했으나 그들은 마감일인 어제까지 눈치만 보다가 막판에 하나마나한 보고서들을 잇달아 제출했다.

그것도 마감전날까지 한건도 없다가 비판여론이 일자 마지못해 보고하는 시늉만 한 듯 하다. 선관위를 우습게 아는 작태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선관위의 영(令)을 세우기 위해서도 보고내용의 진위(眞僞)를 철저히 가려 매운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관위가 제출된 보고자료를 바탕으로 엄정한 실사를 벌여 사조직들의 탈법 불법 여부를 따지기로 한 것은 당연하다. 진작에 그랬어야 할 일이다. 대선주자들이 한달에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씩 돈이 드는 사조직들을 다투어 운영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펑펑 돈을 쓰고 있는 게 보이는 데도 전혀 돈을 안쓴다고 변명하는가 하면 수많은 조직원들이 사실상의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둘러댄다.

각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은 당내행사이기 때문에 엄격한 선거법 적용이 어려운 측면은 있다. 은밀한 사조직 또한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가려내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빨리 손을 쓰지 않고 이대로 놓아두면 이 모두가 불법 탈법의 온상이 될 수 있다. 더이상의 혼탁한 분위기는 절대로 안된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대선주자들이 정말 정신을 차리고 교훈을 얻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92년 대선의 재판(再版)이 시작된다.

대선자금의 원죄(原罪)때문에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 혼돈과 갈등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의 뼈를 깎는 각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상당수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의 새로운 다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불법 타락 선거를 막기 위한 선관위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대선주자 개개인에 대한 「관리카드」까지는 만들 수 없다 해도 전국 2백80여개 일선 선관위 조직을 총동원해 지금부터 철저한 밀착감시에 나서야 한다.

차제에 선관위가 「돈안드는 선거」를 위해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선거관련 법령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 여야 정치권도 선거관련법령 개정 작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중립적 위치에 설 수 있는 선관위가 앞장서는 것이 옳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면 선거제도 개선의 핵심과 방향은 자명하다. 대규모 군중집회 대신 TV토론이나 선거공영제 확대 등을 통한 돈 적게 드는 선거, 선거자금 조달과 지출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선관위는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갖고 이 작업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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