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돈정치」의 원흉

  • 입력 1997년 4월 25일 20시 11분


한보청문회에서 비뇨기과 의사 朴慶植(박경식)씨가 『정치인은 외계인같다』고 던진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치인은 지구에 사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ET 같은 괴물이라는 조롱이다. 아무리 한보사태로 정치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졌기로서니 TV를 통해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혹의 증인」이 정치인들 면전에서 호통을 쳐댄 모습은 아무래도 개운한 느낌으로 남지 않는다. ▼ 외계인같은 정치인 정치가 시궁창이 다된 마당에 무슨 유별난 식견이 있다 한들 남들 다 손가락질하는 정치인들을 변호하겠다고 팔 걷고 나설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봐야 여론의 매를 맞고 고쳐질 정치인들의 악습이 더 기승을 부릴 빌미만 제공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인들이 요즘처럼 도매금으로 매도당해서야 그들에게 정치를 맡긴 국민들의 심경도 편할 수만은 없다. 그들을 정치인으로 뽑아준 사람들이 다름아닌 국민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사람도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면 하나같이 「외계인」 대열에 끼어드는 것이 우리 정치현실이다. 누구누구 할 것 없다. 이것은 결국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정치의 제도 관행 풍토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물에 그 고기, 그 바탕에 그 정치라는 인과관계를 새삼스레 확인하는 것 외에 달리 마땅한 설명의 방도가 없다.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고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돈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고 돈 없이 정치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사람이 바로 「외계인」이다. 꼭 자기 돈으로 정치하는 사람도 없다. 무슨 돈이 됐건 남의 돈 잘 끌어들인 사람이 유능한 정치인이고 그걸 못하면 정치판에서 밀려난다. 남의 돈 받아 쓴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도 안된다. 뒷날 「영향력」으로 갚아주면 된다. 우리 정치의 이 아픈 현실이 지금 한보사태를 계기로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져 회초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의 「민주주의 비용」이다. 우리의 정당이 진정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기여하는 대의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정당과 정치에 필요한 자금을 법에 정한 대로 받아서 쓰고 거짓없이 떳떳하게 공개하는 투명성을 확보한다면 정치자금이 죄의 원천으로 지탄받을 이유가 별로 없다. 많고 적은 것은 제도와 법을 고치거나 보완해서 시행하고 법을 어기면 엄격히 처벌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면 된다. 요컨대 원흉은 보편화된 불법과 부패불감증이지 비용 자체는 아니다. 최근의 고(高)비용 정치구조 개선론이 제기하는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선안들도 그렇다. 방향은 옳게 잡은 인상이지만 현행 통합선거법과 공직자윤리법만 정치인들이 제대로 지켜도 「돈정치」는 잡힐 수 있다. 불법 음성자금을 받아 챙기고도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는 뻔뻔한 논리로 회계처리도 하지 않고 뒷주머니에 쑤셔넣는 관행과 의식으로는 아무리 법 제도를 고쳐도 돈정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보사태는 바로 이것을 적나라하게 실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회와 교훈이 될 수 있다. ▼ 기대 큰 「대선자금 공개」 92년 대선자금 역시 공개 자체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으로서는 어려운 결단이겠지만 언제 누구로부터 얼마나 받아 어디에 썼는지 세세히 밝히고 다시는 그와 같은 죄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수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다. 추상적 고해(告解)만으로 「이제 나는 죄 없소」라고 한다면 오히려 밝히지 않는 것만 못할 수 있다. 알 사람 대충 알고 있는 정도로 비켜가려 한다면 감동할 사람보다 또 속았다고 분개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부터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정식 분류했다는 소식이 무안한 나날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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