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의 은행지배 괜찮은가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12분


금융개혁위원회가 제시한 단기과제 중심의 1차 금융개혁보고서는 대체로 큰 무리는 없다. 은행의 지배구조개편 이외에 금융기관의 업무영역 확대나 금리 및 수수료 자유화, 해외금융 이용규제 완화 등은 이미 의견접근이 이뤄진 사항들이다. 은행의 재벌소유 허용과 중앙은행독립, 금융감독기능 조정, 금융기관 통폐합 등 핵심사항은 2차과제로 넘겼다. 핵심과제는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려 있어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다. 1차과제와 달리 핵심과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가 필요하다. 은행 증권 보험업의 업무영역을 넓혀 겸업을 허용함으로써 경쟁을 촉진하고 금리 및 수수료 자유화로 금융시장을 이용자 중심으로 바꿔나간다는 방향은 옳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값싼 자금을 쉽게 조달하도록 규제를 없애고 벤처금융을 활성화하는 등의 과제는 시행이 빠를수록 좋다. 논란이 많아 쉽게 결론내기 어려운 사안은 기다리지 말고 가능한 것부터 서둘러 제도를 고쳐 시행해야 한다. 장단기 과제를 일괄적으로 처리하려다가는 당장 급한 과제까지 뒤로 밀릴 수 있다. 비상임이사 주주대표로 5대 재벌그룹이 참여할 수 있게 한 은행 지배구조개편은 1차 보고서의 주요내용이다. 주인없는 은행에 대기업의 유능한 경영인을 참여시킨다면 책임경영체제 구축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경영에 책임을 지지않는 은행장 전횡의 금융풍토 개선은 미뤄선 안될 현안이다. 그러나 재벌그룹의 은행 소유를 전제로 한 경영참여 허용이라면 좀더 신중해야 한다. 금융개혁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은 역시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할 것이냐다. 은행대출의 재벌그룹 편중은 심각하다. 지난해 은행 신규대출액의 53%를 5대그룹이 썼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이 심한 현실에서 이들이 금융산업까지 지배, 은행을 사(私)금고화 한다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낙후된 금융산업을 마냥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데 있다. 머지않아 외국인의 국내은행 설립이 허용되고 금융시장 개방으로 경쟁은 격심해질 전망이다. 은행의 주인을 만들고 강력한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재벌참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바로 이것이 딜레마다. 은행소유 중앙은행독립 감독기능조정 어느것 한가지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금융개혁위는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만들기 바란다. 완급(緩急)을 가려 시급한 과제는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다만 소유문제같은 사회적으로 갈등과 논란의 소지가 큰 사항은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정권말기다. 다음 정권에서 다시 손질해야 하는 개혁안은 혼란과 시간낭비만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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