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버스파업은 시장 하기나름』

  • 입력 1997년 3월 27일 19시 55분


지난 26일 시내버스 파업이 예고됐던 6대도시중 서울 인천 대전에서는 실제 파업이 벌어진 반면 부산 대구 광주는 위기를 모면해 대조를 보였다. 6대도시 시장들이 파업사태에 대응하는 자세는 「6도(都)6색(色)」이라 할만큼 달랐고 이는 노사간 협상타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시내버스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노사간 막판 협상이 긴박했던 지난 25일 趙淳(조순)서울시장은 저녁식사 약속을 마친 뒤 밤9시경 귀가했다. 26일 새벽2시경 기자가 서울시청에 들렀을 때 부시장 등 간부와 직원들은 철야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시장실은 비어 있었다. 洪善基(홍선기)대전시장도 25일 밤8시경 공관으로 「정상 퇴근」해 협상진행을 전화로 보고받았다. 崔箕善(최기선)인천시장은 버스파업 예고가 눈앞에 닥쳤던 25일 저녁 미리 예정된 계양구의 한 반상회에 참석한 뒤 시청에 들러 협상 상황을 보고받고는 퇴근해버렸다. 이와 달리 文正秀(문정수)부산시장은 25일 밤10시경 협상이 진행되던 부산버스운송사업조합에 나타나 노사 양측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그는 △시내버스 터널통과료 면제 △버스냉방기 설치비 지원 등의 협상촉진용 보따리를 풀어 이튿날 새벽 협상이 타결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宋彦鍾(송언종)광주시장도 25일 오후부터 협상장에 눌러 앉아 『파업만은 피하자』고 호소했고 노사 양측을 따로 만나 설득한 끝에 26일 새벽 「파업은 유보하고 추후 협상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文熹甲(문희갑)대구시장은 시장개척단을 이끌고 동유럽3국으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 18일 버스 노사 양측을 초청, 『파업만은 피하고 꼭 협상을 타결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문시장으로부터 사전에 지시를 받아 협상중재에 나선 文永秀(문영수)경제국장은 25일 오후부터 26일 새벽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17시간의 마라톤협상에 시종 배석, 중재 활동을 벌여 타결을 이끌어냈다. 시장이 팔짱을 낀 도시에서 파업이 벌어진 반면 협상장을 지키며 중재노력에 나선 시장이 있는 도시에서는 파업이 이뤄지지 않은 일을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 있을까. 김기만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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