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25)

  • 입력 1997년 3월 14일 08시 29분


제7화 사랑의 신비〈11〉 파리자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 오빠, 제발 부탁이니 그 위험한 여행은 단념하세요. 말하는 새니 노래하는 나무니 황금빛 물이니,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빠가 제 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저는 이제 괜찮아요. 두 오빠가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걸 이제사 깨달았어요. 그러니 제발 그만 두세요』 그러나 한번 결심한 큰오빠의 마음을 바꾸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큰오빠는 말 위에 올라탄 채 말했다. 『오, 누이동생아, 너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내가 오래도록 집을 비우지는 않을 것이다. 알라께서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나는 어떤 사고나 곤란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정히 걱정이 된다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알라께 기도나 드려다오. 나의 무사한 귀가를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난 큰오빠 파리드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허리에서 조그마한 칼 한 자루를 뽑아 주며 말했다. 『자, 이걸 받아두어라. 내가 떠난 뒤로 네가 걱정에 시달리지 않도록 이걸 너에게 두고 가겠다』 파리자드는 그것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있다고 제가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작은 칼은 보통 칼과는 다르단다. 이것은 내가 처해 있는 상태를 너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내 걱정이 되면 이 칼을 칼집에서 빼내어 칼날을 살펴보도록 해라. 만약 칼날이 지금처럼 맑게 빛나고 있으면 내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만약 칼날이 흐리거나 녹이 슬어 있다면 나에게 좋지않은 사태가 발생했거나 누구에겐가 사로잡힌 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칼날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너희 둘은 알라의 자비가 나에게 내리기를 기도해다오』 이런 말을 남긴 파리드는 인도로 가는 길로 말을 몰았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큰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파리자드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작은 오빠 파루즈는 그러한 누이동생을 달래어 집으로 데리고 갔다. 파리드의 여행은 길고도 험난했다. 이십 일 동안 그의 앞에는 오직 적막한 대지와 그 적막한 땅에 이따금 돋아나 있는 푸른풀과 그리고 알라뿐이었다. 그 힘들고 고독한 여정을 파리드는 오직 누이동생을 기쁘게 해주어야한다는 일념으로 말을 달렸다. 이윽고 스무날이 지나고 스무하루 째가 되는 날 파리드는 어느 산기슭의 초원에 당도하였다. 그 광막한 초원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나무 밑에는 몹시 늙은 노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파리드는 그 노인이야말로 그가 여행을 떠난 지 꼭 스무하루 째가 되는 날 만난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을 멈추었다. 노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길게 자란 머리와 흰 수염이 얼굴을 완전히 뒤덮고 있어서 눈도 코도 보이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바싹 말라 뼈만 앙상했고, 손톱과 발톱은 한뼘씩이나 자라 있었다. 그러면서도 왼손으로는 염주 알을 굴리고 있었고, 오른손 집게 손가락은 이마 높이에 가만히 올리고 있었으니 명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노인은 속세를 떠난 늙은 고행자였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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