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된장바둑」만만세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국제 바둑대회에서 사상 최초의 9연승 우승을 한 徐奉洙(서봉수)9단이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15세였던 중학교 3학년때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바둑이었다. 바둑유학은 생각지도 못한 영등포 뒷골목의 동네바둑이다. 그로부터 30년. 된장바둑 오뚝이 잡초 표범 등 숱한 별명이 붙은 그의 바둑이 마침내 세계를 제압했다 ▼이번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대회는 韓中日(한중일) 「바둑 3국」에서 각각 최강선수 5명이 출전하는 단체전이었다. 한국의 金榮桓(김영환) 4단이 중국선수에게 패한 후 두번째 선수로 출전한 서 9단은 중국선수 5명 전원과 1명은 이미 탈락해 4명만 남은 일본선수 모두를 이겼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馬효춘 9단을 불계로 이긴 그는 아홉번의 연속 승리중 역전승이 네번, 반집승이 세번이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두들겨 맞아도 계속 고개를 들었던 그의 집념이 이룬 승리였다 ▼趙南哲(조남철) 金寅(김인)시대에 이어 그도 曺薰鉉(조훈현)과 함께 조―서 시대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李昌鎬(이창호) 劉昌赫(유창혁)이 등장, 4인방시대가 되자 무관이었던 그는 자연히 정상 그룹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바둑계는 그를 제외한 3인방 시대가 된 것이다. 2단에 갓 오른 72년 처음으로 명인전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3개의 국제 기전(棋戰)에서 우승하는 등 이름을 날렸던 그였다 ▼작년에는 수입도 6천2백만원에 불과, 5위에 머물렀다. 이창호의 수입 6억4천만원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이번 쾌거로 1억4천만원의 상금을 받아 올해 순위는 분명히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수입이나 승률로 순위를 매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자신의 이름에 모든 것을 걸고 잊힐 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승부사』라고 평가했다. 끝없는 내면의 싸움을 통해 마침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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