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고미석/실패해도 「오뚝이」처럼…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우리들의 최대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데 있다」(골드 스미스). 출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금주의 격언에 무심코 눈이 갔다가 나의 첫번째 실패는 어떤 것일까 되짚어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때 어린이노래자랑 예선에 참가해 덜덜덜 떨다가 「엄마는 섬그늘에…」까지만 부르고 그만 엉엉 울면서 내려온 것이 제일 먼저 머리에 스쳤다. 그뒤에도 겁많고 소심한 성격탓에 부끄러운 기억은 너무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헤집으며 영화필름처럼 빠르게 돌아가던 상념이 갑자기 멈춘 것은 10여년전 전기 대학 입시때로 거슬러가서였다. 『죄송합니다. 번호가 없는데요』 그때도 그랬다. 요즘처럼 전화로 대학 합격여부를 물어봤는데 내 수험번호가 없다는 대답이다. 혹시나 해서 한번 더 전화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중학교는 뺑뺑이, 고등학교는 추첨으로 들어간 내게 가슴철렁한 좌절의 쓴맛을 처음으로 안겨준 것이다. 막상 떨어진 것을 알고 나서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뭔가 고뇌어린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멍하기만 했다. 가족들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방안에만 틀어박힐 수밖에…. 그래도 별다른 애정표현 없이 덤덤한 성격의 식구들이 낙방생을 위로한답시고 유난떨지않고 평소처럼 심상하게 대해준 것이 내심 다행스러웠던 것 같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으로 죽끓듯 바뀌는 대입제도지만 그 세월속에서 변함없이 반복되는 것은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그리는 희비쌍곡선일 것이다. 얼마 안가서 올 입시철은 다시 파장을 맞고 재수생, 원하던 대학이나 전공이 아니어서 갈등하는 신입생, 대학을 포기하고 진로를 변경하는 청춘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시로 인해 단번에 생의 승부가 가려진다는 생각은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소견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기자로 일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각기 하는 일은 달라도 자기분야에 우뚝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실패를 통해 삶에 오만하지 말라는 것을 배웠다」고 들려주었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실패에 호들갑떨지는 말자. 어떤 인생이든 쉬운 인생은 없으므로…. 고미석<생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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