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대화」가 불가능한 현실

  • 입력 1997년 1월 13일 20시 44분


신한국당의 李洪九(이홍구)대표가 13일 민노총 파업지도부가 농성중인 명동성당을 방문한 것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집권당대표로서 열기 뜨거운 파업현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 아침 이대표가 명동성당 방문의사를 밝히자 측근들은 『신변안전이 우려된다』며 극구 만류했다. 이대표가 명동성당에 머문 50여분 동안 간간이 욕설 야유와 눈덩이가 날아들었으나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당초 이대표의 명동성당행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金壽煥(김수환)추기경과의 면담보다 이대표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지도부를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노총측이 『개악된 노동관계법의 철회와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지휘부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취소되지 않는 한 만남의 의미가 없다』며 거부, 관심을 끌었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노총과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자 이대표의 한 수행원은 『「노동관계법 처리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신한다」고 했던 이대표가 자신의 소신을 꺾고 찾아 갔으면 일단 대화에 응하는 게 예의 아니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명동성당에서 만난 한 민노총 관계자는 『한쪽으로는 우리를 비난하면서 대화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대표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여야영수회담 거부, 노동법 재개정 논의배제 등 진짜로 대화를 거부하는 쪽이 어딘데 그러느냐』며 그들대로 불만을 토로했다. 책임의 경중(輕重)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날 이대표의 명동성당행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대화불능의 상황」만 확인한 채 끝나 뒷맛이 씁쓸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 사 정이 모두 한발짝씩 물러서야 한다. 설혹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있더라도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간다는 대국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민노총의 대화거부 직전 김추기경이 이대표에게 들려준 말이 바로 명동성당에서 통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말할 수 없이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朴 濟 均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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