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프라하〓金昶熙특파원」 시장경제가 결코 복잡한 수식(數式)이나 어려운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동구의 자영업자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나 수호바(35·여)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분리 이전)재무부의 기획분야에서 5년간 일한 전직 공무원. 이제는 의류소매점 두곳에서 점원 10여명을 거느린 어엿한 자본가로 변신했다.
▼“모든 것 걸고 사업”▼
친구가 가게를 차린데 자극받아 그도 지난 91년 브라티슬라바 교외의 집근처에 조그만 상점을 열었다. 남편은 근무하던 외국회사까지 그만두고 물건 떼어오는 일을 맡았다. 사업자금은 전액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과거의 연줄이 상당히 도움이 됐다. 「모든 것을 걸고」 일하다 보니 수입이 짭짤해 2년만에 도심지 아파트 단지 근처에 조금 큰 상점을 하나 더 열었다.
『과거에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자료를 처리했습니다. 지금은 똑같은 일이 거의 없죠. 항상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는 것이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유통―운수업 압도적▼
매일 오전8시쯤 가게에 나온다. 계약 결재 대출 물건인수 장부정리 점원관리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다보면 하루해가 다간다. 수호바는 『앞으로 2년마다 가게를 하나씩 더 열 계획』이라고 야무진 포부를 펼쳐보였다.
이런 식으로 95년까지 중동구 지역에 등록된 기업 총수는 모두 3백36만개. 반수 이상이 설립자의 가정에서 사업을 하고 3분의2 정도가 종업원 없이 꾸려나간다. 업종별로 보면 유통업(37.6%), 운송서비스업(28.7%)이 압도적이고 숙박 및 요식업(6.1%)도 있다. 업종이 무엇이든 이들은 엄청난 자기희생과 대단히 높은 위험부담 속에 일을 벌인다는게 공통점.
폴란드 바르샤바의 오이게니우스 보이착(50)은 직물공장 노동자로, 부인 그라지나(42)는 지난79∼91년까지 10년이상 독일 베를린에서 청소부로 각각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이자만으로도 폴란드에서는 중류 정도의 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탐색끝에 94년 집근처에 식품점을 열었다. 개점시간은 오전6시부터 저녁8시까지. 개인생활의 희생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세무서의 눈총과 구청의 간섭이 어찌나 성가신지 첫 6개월동안 마누라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나도 다 때려치우고 실업자 등록이나 할까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창업즉시 도산도 속출▼
여전히 두꺼운 관료주의의 벽을 극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귀동냥이 필요했다. 그결과 현재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계속 손님이 끊이지 않는 가게와 빨간 독일제 신형 오펠 승용차다. 프라하의 가구기술자 페트르 비네츠키(33)도 지난89년 시대가 바뀌기 무섭게 동료 기술자와 함께 주문가구점을 열었다. 종업원도 2명 구했다. 손재주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그치지 않았고 월소득도 중산층수준을 넘게 됐다.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자영업자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창업 첫해에 도산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다는 얘기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운영자금. 금융제도가 미비하고 외환 역시 부족한 상황이 이들에겐 넘을수 없는 한계다. 기업운영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자금부족을 꼽은 비율이 헝가리 83%, 폴란드 77%, 체코 73%인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사장님」 꿈을 키워가는 자영업자들이 중동구 경제의 가장 큰 희망이라는 점에 대해선 아무도 이견이 없다. 이 지역에서 식량을 구하려는 긴 행렬을 「옛날 이야기」로 만들어버린 것도 사실상 이들의 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