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5)

  • 입력 1997년 1월 5일 20시 05분


첫사랑〈5〉 아,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시절, 그 여자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달랐던 것 한 가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그 나이의 여자 아이들이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의 사진 한 장쯤은 으레 책상 유리판 아래든, 아니면 지갑 속에든 끼워다니게 마련인데 전혀 그러질 않았습니다. 때로는 물끄러미 다른 아이들의 그런 사진을 바라보면서도 말입니다. 흔히 그 나이의 여학생들이 빠지기 쉬운 총각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아마 이학년이던 열여덟 살 때의 일일 겁니다. 봄인지, 가을인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쉬지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일이고, 소풍을 마치고 돌아와 저마다 찍은 친구들의 사진을 주고 받을 때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자기의 얼굴이 나오지도 않은 다른 두 친구의 사진을 한 장 더 뽑아 달라고 말하더군요. 왜 그러느냐니까, 그런 건 묻지 말고 그냥 뽑아 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아직도 가슴이 작은 아이는 자기가 찍은 그 사진을 뽑아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두 친구의 사진 속에 먼 배경처럼 뒤편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국어 선생님이 새끼 손톱보다 작은 얼굴로 그렇게 그 사진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선생님의 얼굴을 오려 자기 목걸이에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수줍게 그것을 무슨 큰 비밀이거나 보물쯤 되는 것처럼 보여주었습니다. 동전만한 메달형의 목걸이에 마치 그 사진을 붙이기 위해 파놓은 듯 옴폭한 자리가 있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사진은 그 자리에, 그리고 그 목걸이와도 잘 어울렸고요.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 난 선생님이 다른 여자하고 결혼하면 죽어버릴 것 같아』 열여덟 살짜리 여자 아이의 입술에서, 두번이나 만약에, 만약에 하고 나온 말입니다. 가슴이 작은 아이는 조금 전까지는 그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사진 목걸이를 본 다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한 번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그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그 아저씨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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