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세계]“삐삐” 울리면 스트레스 “팍팍”

  • 입력 1996년 12월 29일 20시 56분


「許承虎기자」 『자동차 운전도중 상사로부터 삐삐가 오면 빨리 응답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머리카락이 타는 듯한 느낌입니다』

모 제과회사 영업사원 K씨의 말이다.

그는 결국 견디다못해 돈을 들여 휴대전화를 하나 장만했다. 운전도중에도 언제든지 호출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K씨는 직장상사나 동료에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전화를 걸 때만 사용하고 있다.

『삐삐 받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휴대전화까지 울려대면 도저히 제명까지 못살 것 같아요』

10년쯤 전만해도 삐삐가 워낙 귀해 삐삐가 신분의 상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학생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흔해졌다.

이와 함께 삐삐의 의미도 달라져 직장인에게는 삐삐가 「사람을 옭아매는 동아줄」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 대기업의 신세대 사원 L씨는 삐삐가 두 개다. 회사에서 지급받은 것이 있지만 자기돈으로 하나 더 장만했다. 이 삐삐는 가족 친구 애인과 교신할 때 사용한다. 그는 회사에서 지급한 것을 「지옥 삐삐」, 자신이 산 것을 「노는 삐삐」라고 부른다.

『퇴근 즉시 업무용 삐삐를 끕니다. 휴일에도 마찬가지예요. 그 삐삐가 울리면 스트레스가 시작되지요.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더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돼요』

서울 시내 한 사우나탕의 주인 K씨는 『목욕탕에 들어가는 손님들중 삐삐나 휴대전화를 맡기면서 「혹시 호출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통신수단의 발달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근무한다고 회사호출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는건 아니다. 해외에선 「모발폰」으로, 한국에선 휴대전화로 불리는 이동전화기에 묶여있기 때문. 전화를 거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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