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선생님, 우리 선생님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19분


여고1년생이다. 우리반은 전교에서 가장 시끄러운 반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게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창피한 일이지만 한 학기에 두번 있는 환경미화 심사때는 꼴찌를 도맡다시피 한다. 담임 선생님이 순한 탓인가. 한번은 청소 후 아이들이 다 가버려서 딱 다섯명을 데리고 종례를 하신 적도 있다. 비록 이런 상황이지만 반 아이들 모두 착하고 활발해서 그만큼 재미도 있는 반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반이 지난 11월 어느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학교가 수능시험장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대청소를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교실안의 책이란 책은 모조리 치워야 했다. 청소를 하고 책도 다 나르고 비교적 깨끗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한두명씩 교실을 뜨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선생님께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문을 나섰다. 30분쯤 흘렀을까. 중요한 걸 잊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막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멀리서 혼자 휴지통을 비우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당장 가서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에 띄지 않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반아이들에게 믿고 맡기셨는데 뒤돌아보니 마무리가 안돼 있어 당신이 몸소 뒤처리를 하신 것이다. 그러고 보니 1학년도 다 마쳐가는데 우리는 아직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한마디 드리지 못했다. 처음 담임을 맡으셨으면서도 지난 1년동안 힘들다는 말씀 한마디, 매한번 심한 꾸중 한번 하지않고 묵묵히 마치 곰처럼 우리반을 이끌어 오신 담임 선생님이시다. 그런선생님이계시기에우리는 다른 고등학생이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자유속에서 더 편하게 그리고 더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새삼스레 선생님의 은혜에 고개가 숙여진다.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선생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드릴지 몰라 망설여진다. 반 아이들과 의논해 봐야겠다. 이 미 성(충남 논산시 취암1동 137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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