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피지 원주민 의료봉사 5년째 김행란씨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1시 02분


「수바(피지)〓羅成燁기자」 「독따」 김행란씨(34)는 한때 식인풍습이 있던 피지 원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다. 「독따」는 그가 91년 피지를 찾은 이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를 돌며 원주민 치료에 열중하자 피지사람들이 존경의 뜻을 담아 붙여준 존칭. 「독따」는 의사(Doctor)의 영국식 발음에 피지어의 강세를 더한 것.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에서 해외선교사를 택했어요.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피지에 오게 만들었지만 와야 할 곳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91년 우연히 길거리에서 「피지의 의료상황이 절박하다. 사람을 구한다」는 전단을 읽고 피지행을 결심했다. 당시 그는 서울 구로동에서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다. 81년 충주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부천 성요셉병원 수술실에서 2년간 근무한 뒤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피지에 가서 본 의료상황은 광고전단 내용보다 훨씬 절박했다. 전문의는 전무한 실정이고 대부분 6년간의 기초교육만을 마친 의사 1백여명이 80만 국민의 건강을 도맡고 있었다. 그는 바로 피지의 수도 수바에 있는 「선교훈련센터」에서 피지인 교육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호주 뉴질랜드의 한국인교회가 세운 이 훈련센터에는 20여명의 원주민이 간단한 의료기술과 성경을 배우고 있었다. 현지사정에 익숙해지자 그는 곧 의료혜택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산간오지 마을들을 찾아나섰다. 50명에서 3백여명씩 마을을 이뤄 채집생활을 하고 있는 오지 원주민들은 부족한 음식과 나태한 생활태도로 상당수가 당뇨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후 그는 1년의 반 이상을 원주민 돌보기에 매달렸다. 한번 나서면 2,3주일씩 여러 마을을 돌아 온다. 워낙 깊은 산 속이라 차에서 내려 정글을 헤치고 2∼3시간을 걷기 일쑤다. 의사가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치료는 간단한 약처방이나 응급조치정도이지만 피지의 어느 병원을 가도 이 이상의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 『우리나라라면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질병인데도 약이나 의료시설이 없어 누워 지내거나 생명을 잃기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서양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할 때입니다』 독신인 그의 꿈은 소박하다. 『우리 의료진이 한달간만 이들을 돌봤으면…. 하다 못해 약이라도 충분히 있다면…』 이 꿈은 지난 5년간 그의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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