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마닐라解法」이후

입력 1996-11-29 20:58수정 2009-09-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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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마닐라 韓美(한미)정상회담 결과는 북한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한 한국측의 종전 입장에서 전혀 후퇴하거나 양보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종전 입장」이란 잠수함사건에 대해 시인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하기 전에는 북한과의 어떤 대화나 지원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설명은 큰 당혹감을 안긴다. 마닐라회담 공동발표문은 「제네바 핵합의가 이행될 것이고, 4자회담을 계속 추진하며, 잠수함사건을 해결하고 방지하기 위해 북한측에 수락할 수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정상회담 3일 후의 기자간담회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4자회담에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은 불변이지만 북한이 4자회담에 나와서 하겠다면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종전의 압박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되 그 정책에 현실을 고려한 유연성을 가미했음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정책 탄력성만 제약▼ 그러나 만약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 「수락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이 해법은 오히려 정책의 탄력성을 제약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정책이란 때로 실패할 수도 있다. 불가항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가 발견되면 즉각 바로잡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설득이 따라야 한다. 그것을 두고 일관성이 없다고 책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수함사건이 터졌을 때 북한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압박하고 대북지원 재고(再考)를 선언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잠수함사건은 김대통령이 올 8.15경축사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방안」을 일거에 백지로 돌려버린 사건이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잠수함사건 대응은 처음부터 우리와 달랐다. 배경에는 북한의 연착륙 유도라는 일관된 정책이 있었다. 「제네바합의 이행을 통한 북한 핵 동결,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성, 동북아 안정을 위한 북한과의 접촉 증대」가 미국의 대북한정책 기조였고 이 정책은 일본과 중국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내고 있었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역공세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대북정책을 밖에서 규정하는 이 엄존하는 현실때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 어려운 현실을 적절하게 수정하거나 수용하는 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이 됐다. 그것을 가로막은 큰 요인 중 하나가 국내정치적 요구였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마닐라회담은 이 「고립」을 풀 수 있는 열쇠와 딜레마를 동시에 제공한 격이다. 이것을 푸는 것이 마닐라회담이 남긴 과제가 됐다. ▼말 아끼고 인내심을▼ 대북정책을 우리의 판단과 능력에 따라 주도적으로 입안하고 추진할 수 없게 하는 현실은 대단히 불만스럽다. 미국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김대통령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그럴수록 빈틈없는 한미 공조(共助)로 말을 아끼면서 일관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전략에 접근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북한문제의 해법일 것이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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