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성적 정서만 굴절시킨다면 예술가 아니다

  • 입력 1996년 11월 14일 20시 28분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시비가 또 일어나고 있다. 검찰은 소설가 蔣正一의 장편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성이 있다고 판단, 이 책을 낸 출판사 상무를 구속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사법적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한다. 문학성보다는 노골적인 성묘사에 치중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케 했다는 이유다 ▼지난 69년 염재만이 쓴 반노(叛奴)라는 소설은 7년여의 송사끝에 무죄로 결론났다. 여배우의 알몸연기로 논란을 일으킨 연극 「미란다」의 연출자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즐거운 사라」의 작가 마광수는 「선량한 사회 풍속을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기준에 따라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연세대 교수였던 그는 이 판결로 학교측으로부터 면직됐다. 외설인가, 예술인가.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불러일으킨 논쟁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예술과 외설은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기준으로 시비를 가리는 것 같다. 읽고 본 것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면 예술이고 혐오감과 수치심을 준다면 외설이라는 구분도 있다. 외설은 어린이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주고 여성에게는 모욕감과 고통을 주며 폭력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성희(性戱)장면만 나열하는 포르노조차 그것이 갖는 카타르시스적 효용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미적 감각의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예술의 자유라고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여인의 나신(裸身)이 빛의 오묘한 반사로 표현될 때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음란한 배경과 분위기가 있을 때는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끼는 게 보통사람들의 정서다.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성적 정서만 굴절시켜 상업적인 관심을 끌려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예술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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