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196)

입력 1996-10-26 20:17수정 2009-09-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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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철없는 사랑 〈35〉 교주는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더니 이윽고 창 바로 앞에 있는 가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누각 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달같은 처녀와 젊은이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발그스름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 그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에 교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얼거렸다. 『오! 저 두 분을 만드신 신께 영광 있으라!』 그런데 그때 그들 곁에 앉아 술잔을 손에 들고 있던 이브라힘 노인이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질 않겠는가? 『이보시오, 아름다운 공주님, 노래 없는 술은 맛이 없어요. 정말이지 나는 어떤 시인의 이런 노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말하고난 노인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자, 술잔을 돌려라! 달같이 고운 님 손을 잡고. 노래하지 않거든 마시질 마라, 나는 알고 있다. 노래를 부르면 말(馬)도 물을 마신다는 걸. 그 광경을 본 교주는 너무나 노하여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무에서 내려왔다. 『여봐, 쟈아파르. 나는 여태껏 신앙심 깊은 사내가 저런 추잡한 짓을 하는 건 처음 봤어. 그대도 올라가 보라.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광경인지』 이 말을 들은 대신은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나무 위로 기어올라갔다. 올라가보니 과연 아름다운 두 젊은 남녀와 술이 넘쳐흐르는 잔을 든 이브라힘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광경을 본 대신은,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대신이 나무에서 내려오자 교주가 말했다. 『쟈아파르여! 우리를 성법(聖法)의 의식을 지키는 사람들로 창조하시고, 위선자의 의식으로 자기를 속이는 죄에서 구해주신 알라를 칭송하자』 그러나 쟈아파르는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을 목격한 터라, 얼떨떨해져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때 교주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저 안에 있는 두 젊은이들은 어떻게 여길 들어왔을까? 누가 내 누각에까지 들여놓았을까?』 이렇게 말하고난 교주는 잠시 후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야 어쨌든 저 두 젊은 남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일찍이 보지 못했는 걸』 교주가 이렇게 말하자, 어떻게 해야 교주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대신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 『사실이 그러하옵니다. 교주님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에서 천사들을 내려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여보게, 쟈아파르. 그럴 게 아니라 우리 함께 나무에 올라가 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즐기세』 그래서 대신은 왕을 따라 나무 위로 기어올라갔다. 나무 위로 올라가면서 그는 마음 속으로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여간 기쁘지 않았다.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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