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만 6번째’ 크로스컨트리 전설 이채원의 이유 있는 완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5일 2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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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길 도대체 왜 왔지?’

5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국립 크로스컨트리 센터. 2022 베이징 겨울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애슬론 15km에 출전해 한참을 달리던 국가대표 이채원(41·평창군청)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4년 전 평창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지난해 현역 복귀를 택한 그였다. 폐 속을 찢을 듯 파고드는 차가운 칼바람에 후회가 몰아쳤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곧바로 답이 따라붙었다. ‘내 딸 (장)은서를 위해서.’ 딸 은서는 베이징을 향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응원해줬다. 평소 엄마와 떨어지길 싫어하는 은서가 어렵사리 건넨 이 응원은 이채원이 어떤 어려움에도 도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됐다. 떨어지게 돼서 미안해진 만큼, 자랑스러운 엄마가 돼 돌아가야만 했다.

이날 경기에 나선 이채원은 사실 며칠 전부터 몸이 아팠다. 코, 목감기에 몸살 증세까지 겹쳐 대회 전 해열제 주사를 두 차례나 맞았다. 한국의 평창보다도 해발 1000m 가량이 높은 장자커우의 높은 지대(평균 1720m)에서 영하 4도, 초속 8m로 불어 닥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활강 뒤 평지가 없이 오르막이 곧바로 이어지며 쉬어갈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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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은 “어떻게든 완주하자”고 다짐했다. 코스 1.3km 지점을 전체 65명의 선수 중 61번째로 통과한 이채원은 결승 지점 역시 55분 52초 6으로 61위로 통과했다. 완주를 포기한 3명의 선수를 빼면 뒤에서 두 번째, 선두인 테레세 요헤우(44분 13초 7)와는 11분 38초 9 뒤처진 성적이다. 이채원은 자신의 올림픽 개인 최고 순위(33위·소치 올림픽 30km 프리)를 넘겠단 목표를 다음 경기로 미루게 됐다.

경기 후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엄마 너무 힘들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딸에게 장난스러운 엄살을 건넸지만 남은 경기를 앞둔 그의 각오는 더 결연해졌다. 이채원은 “베이징에 오기 전에 은서가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최선만 다하고 돌아와’라고 말해줬다”며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돌아가서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채원은 8일 개인 스프린트 10km, 10일 개인 클래식 10km 두 종목을 남겨두고 있다. 이날 경기를 무사히 마치며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을 시작으로 한국 선수 역대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6회)을 세웠다. 이제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주행을 시작해야할 때다.


장자커우=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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