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점보단 장점, 채찍보단 당근…박항서가 베트남을 춤추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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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8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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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U-23 축구대표님 감독이 17일 오전 경남 통영시 통영체육관에서 인터뷰 후 선수들과 실내훈련을 하고 있다. 2019.12.17/뉴스1 © News1
박항서 베트남 U-23 축구대표님 감독이 17일 오전 경남 통영시 통영체육관에서 인터뷰 후 선수들과 실내훈련을 하고 있다. 2019.12.17/뉴스1 © News1
“중국과의 1차전이 끝난 뒤 콜린 벨 감독이 당시 선발로 나섰던 11명의 선수들과 모두 면담을 진행했다. 그때 한 선수가 눈물을 흘리더라. 나중에 그 선수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직 가치가 있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 주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 콜린 벨 감독을 옆에서 지켜본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벨 감독이 “선수들을 대하는 것, 선수들에게 동기를 심어주는 것은 탁월한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타자의 시선만이 아니다.

여자대표팀 베테랑 플레이어 심서연은 “감독님이 선수들 개개인에게 ‘너를 믿는다’ ‘너가 필요하다’는 말을 꾸준하게 해주신다. 덕분에 마음도 편해지고 동기부여도 확실히 생긴다”고 전했고 동아시안컵 여자부 최우수DF로 선정된 장슬기는 “새 감독님이 오시면서 확실히 많은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니까, 누가 투입되든 그 선수가 베스트라는 마음이 생긴다. 팀으로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위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그 칭찬의 힘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변화다. 주로 비단길을 걷거나 넉넉한 환경에서 지내는 이들에게는 작은 온기가 대단할 것 없겠으나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는 그것이 큰 힘이 되는 법이다. 베트남에서 2년 동안 승승장구 스토리를 쓰고 있는 박항서 감독도 바로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베트남 선수들을 처음에 봤을 때, 정신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다는 게 아니다. 이 친구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더라. 자신들이 잘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것을 바꿔주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17일 오전 통영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박항서 감독의 말이다. 지난 14일 베트남 축구대표팀(U-22)을 이끌고 전지훈련 차 한국을 찾은 박 감독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오는 22일까지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2017년 겨울부터 베트남 A대표팀과 U-23대표팀의 지휘봉을 동시에 잡고 있는 박 감독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과 스즈키컵 우승, 그리고 올해 동남아시안(SEA)게임 우승 등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쓰고 있다.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 정상에 오른 것은 10년 만이고, ‘동남아시아의 올림픽’으로 통하는 SEA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60년 만의 쾌거다.

어떤 비결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한국에서 3부리그 클럽(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을 맡았겠는가”라고 먼저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이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선수들의 장점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감독은 “없는 자원을 만들어 쓰기 보다는 있는 자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 좋은 선수들을 만난 덕분이다. 그들이 나를 믿고 따라줬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너는 이것이 부족해”를 지적하기 보다는 “넌 이것을 잘해”를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지도 포인트다.

베트남 대표팀의 에이스로 꼽히는 응우옌 꽝하이는 “감독님 밑에서 축구한 지 2년 됐다. 감독님이 베트남 선수들의 레벨을 높여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주셨다. 그 덕분에 우리가 모두 하나 돼 경기할 수 있게 해줬다.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표현만 달랐지 앞서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물론 언제나 ‘당근’이 ‘채찍’보다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칭찬에 목마른 이들에게도 차가운 정신력만 외친다면 그것은 오판이 될 확률이 높다. 박항서가 베트남을 춤추게 한 이유. 비단 축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리더십이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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