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묘미 중 하나는 단 3㎝차이를 놓고 투수와 타자, 구심이 벌이는 심리전이다. 이상군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총괄은 현역 시절 심판들의 ‘시청각 교제’ 역할을 했다. 그만큼 제구력이 뛰어났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그렉 매덕스는 1회보다 5회 이후 스트라이크존(S존)이 더 넓어지곤 했는데 존에 살짝 걸치는 공으로 포수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구심의 시야를 넓혔다는 믿기 힘든 일화도 전해진다.
KBO리그는 S존이 과거에 비해 좁아지며 제구력 투수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파워피처에 비해 구속과 회전수가 낮은 경우가 많아 타고투저 시대 공격적인 스윙에 장타를 많이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그 흐름이 바뀌어 가며 정교한 투구를 앞세운 투수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두산 베어스 유희관(32)은 22일까지 올 시즌 9경기에서 3.7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10승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이 6.70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안정감을 다시 되찾은 모습이다. 16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는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달라진 배경에는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이 있다. 유희관의 올 시즌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은 21.9%로 규정이닝 이상을 던진 리그 32명 중 가장 높다.
정교한 제구가 뒷받침 되면서 타자들은 굉장히 신중하게 유희관의 공을 지켜봤고, 또한 S존을 통과한 공을 공략하지 못하며 스트라이크를 자주 허용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리그 에이스급 투수로 꼽히는 두산 조쉬 린드블럼과 LG 타일러 윌슨은 이 비율이 각각 19.7%, 19.9%다.
린드블럼의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5㎞, 윌슨은 144㎞다. 유희관은 이보다 훨씬 느린 평균 128㎞의 직구로 더 높은 루킹 삼진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유희관은 직구 뿐 아니라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의 제구도 뛰어나기 때문에 타자들 입장에서는 더 스윙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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