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손흥민이 PK를 계속 차야 하는 이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5시 30분


최근 PK를 연거푸 실축한 손흥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PK를 차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감 결여는 단순히 PK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 경기에서 손흥민(뒤쪽)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황의조의 슛을 바라보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최근 PK를 연거푸 실축한 손흥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PK를 차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감 결여는 단순히 PK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 경기에서 손흥민(뒤쪽)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황의조의 슛을 바라보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활약한 차범근은 통산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었다. 특이한 건 98골 중 단 하나의 페널티킥(PK) 골이 없다는 점이다. PK골까지 추가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궁금한 건 그 긴 세월동안 PK골이 없었던 이유다. 그가 최근 털어놓은 얘기는 이렇다.

“대표팀 막내로 참가한 1972년 아시안컵에서 이라크와 조편성 경기를 했는데, 승부차기를 했어. 더운 날씨에 너무 많이 뛴 탓인지 선배들은 빠지고 후배들이 승부차기에 나섰지. 근데 내가 찬 볼이 너무 엉뚱하게 관중석으로 떨어진 거야. 하늘이 노랗더라고. 고려대 4학년 때 열린 선수권대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주장인 내가 1번 키커로 승부차기를 했는데 실축을 했어. 체면이 서지 않았지. 그 뒤로는 영영 안녕이었어. 독일에서도 단 한 번도 찬 적이 없어. 그 악몽이 오래간 거지.”

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아예 PK를 차지 않았다. PK가 주는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진작 주위에서 격려를 해주고, 더 많은 기회를 주면서 자신감을 심어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즉,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심리치료를 했다면 차범근의 축구역사는 더 빛났을 수도 있었다.

축구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토트넘)도 요즘 PK 트라우마에 빠졌다. 파울루 벤투가 사령탑에 앉은 뒤 2승1무로 상승세를 타는 한국대표팀의 분위기와 달리 손흥민 개인적인 기분은 별로일 것이다. 그는 12일 우루과이전이 끝난 뒤 “만원 관중 앞에서 강한 팀과 경기해 좋았다. 팀으로는 결과와 내용에 대해 만족한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PK 실축을 얘기한 것이다.

이날 손흥민은 PK를 차기 전 상대 골키퍼와 신경전을 벌였다. 그게 화근이었는지는 몰라도 코스를 읽히며 가로 막혔다. 황의조가 재차 밀어 넣어 실축이 가려졌지만 9월 코스타리카전에서도 PK를 놓친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내가 잘못 찼다. 골키퍼가 막기 좋은 코스로 찼다. 짜증이 난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면서 “이제는 페널티킥을 차지 않으려 한다. 난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한 선수”라고 자책했다.

PK를 실축하면 짜증이 날 만하다. 또다시는 안 차고 싶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그의 뜻대로 PK를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어떻게든 이 고비를 적극적으로 넘겨야 한다. 지금 포기해 버리면 대표팀은 물론이고 소속팀에서도 다시는 PK 기회를 못 잡을 수도 있다. PK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손흥민의 앞날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2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 경기에서 손흥민(왼쪽)이 우루과이 수비수를 제치며 돌파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지난 12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평가전 경기에서 손흥민(왼쪽)이 우루과이 수비수를 제치며 돌파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손흥민의 골 감각은 탁월하다. 슈팅도 강하다. 각도도 예리하다. 골문 근처 프리킥 능력도 뛰어나다. 문제는 PK다. 골대에서 11m 거리에서 차는 PK의 성공확률이 70%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만큼 키커가 유리하다. 스트레스의 정도가 눈동자 움직임을 변하게 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선수가 골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압박감이 PK골 성공률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그 압박감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실축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손흥민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이고 대표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게 한국축구를 강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국제축구대회에서 PK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비디오판독(VAR)이 도입된 2018러시아월드컵이 대표적인 예다. VAR 덕분에 오심과 편파판정 시비가 확 줄었다. 아울러 PK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역대 최다인 29차례의 PK가 나왔다. 내년 1월 열릴 2019년 UAE 아시안컵에서도 VAR이 도입된다. PK가 승부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손흥민은 우리 대표팀 주장이다. 주장은 정신적인 버팀목이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벤투 감독을 영입하며 기적을 꿈꾸는 2022카타르월드컵에서도 캡틴일 것이다. 그때는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감이 더 없이 중요한 이유다. PK를 포기하겠다는 그의 발언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PK 자신감 결여는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6일 파나마전에서 PK가 나왔을 때 손흥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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