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잔류 전문가’ 학범슨의 생존 매뉴얼은 이번에도 통할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12일 05시 30분


광주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광주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김학범(57) 광주FC 감독은‘학구파’다. 명지대학교에서 운동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부하는 지도자다. 현장에서도 축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유럽이나 남미로 건너가 견문을 넓힌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해야 선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처럼 공부에 전념하게 된 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표팀 코치생활이 계기가 됐다. 당시 러시아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그 때부터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매년 한번씩은 외국으로 나가 경기를 관전하고, 현지 훈련장을 살피며 지식을 쌓았다.

성남 일화가 2001~2003년 K리그 3연패를 차지할 때 차경복 감독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감독이지만, 사실 김(학범)코치가 많이 했어. 많은 작전은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지. 우승은 다 김 코치 덕분이야.”

성남일화(現 성남FC)시절 김학범 감독. 스포츠동아DB
성남일화(現 성남FC)시절 김학범 감독. 스포츠동아DB

겸손이 다분히 섞인 말이었지만 사실 김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단 관리 능력은 모두가 인정했다. 2006년에는 감독으로서 성남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술에 능한 그의 별명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빗댄 ‘학범슨’이다. 축구 기자들이 전술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싶을 때 김 감독의 전화번호를 먼저 누르는 이유가 다 있다. 김 감독에겐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바로 ‘잔류 전문 감독’이다.

승강제 시스템의 K리그에서 강등은 치명타다. 그래서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뉘는 시즌 중반부터 관심의 초점은 우승과 더불어 어느 팀이 강등될 지에 쏠린다. 이 때 지도자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팀을 살릴 수 있는 지도력이 가장 필요한 때다. 그럴 때마다 입에 오르는 이름이 김 감독이다.

2012년 최하위 강원FC의 요청으로 긴급 투입돼 잔류시킨 감독도, 2014년 막판 위기 상황에서 손을 내민 성남FC를 구해낸 것도 김 감독이었다.

강원FC 시절 김학범 감독. 스포츠동아DB
강원FC 시절 김학범 감독. 스포츠동아DB

강등권의 외줄타기에서 김 감독은 특유의 지략으로 살아남았다.

광주는 김 감독이 맡은 3번째 시민구단이다. 광주 역시 위기의 순간에 전문가를 찾았다. 8월 남기일 감독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자 구단은 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물론 이번에도 클래식(1부) 잔류를 부탁했다. 광주는 겨우 4승을 거뒀고, 승점 19로 꼴찌였다.

김 감독이 팀을 맡고 치른 경기는 3경기다. 전북(1-3 패) 제주(0-1 패)에 이어 9월 10일 원정경기에서 인천과 득점 없이 비겼다. 3경기에서 얻은 승점은 겨우 1점이다.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경험으로 얻은 생존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광주의 상황이 예전 강원이나 성남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능력이 떨어져도 위치별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있으면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집을 짓더라도 비가 안 새게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무너지는 팀은 대개 그게 안 된다.”

그렇다고 변화를 많이 줄 수도 없다. “어차피 (더 이상의) 선수는 없다. 이 선수들로 꾸려가야 한다. 지금 많은 변화를 주면 선수들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광주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광주FC
광주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광주FC

김 감독은 지금 광주에 필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봤다. 그는 “구성원의 문제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꾸 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것은 자신감 회복이다. 선수들의 심리적인 분발이 중요하다. 축구 뭐 별거 있나. 하자고 하면 다 된다”며 감독 스스로 자신감을 보였다. 최하위 광주로선 매 경기가 승부처다.

김 감독은 “1점이라도 갖고 올 수 있으면 갖고 와야 한다. 승부를 건다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단 1점이라도 뽑아야 스플릿 가기 전까지 승점차를 좁힐 수 있다. 스플릿 이후에 죽기 살기로 승부를 보면 된다”며 생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취임 때 ‘전쟁터에 낙하산 하나 메고 뛰어드는 심정’이라고 했던 김 감독.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잔류 전문가’답게 또 한번의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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