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안전장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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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2012년 12월 10일 류현진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LA 다저스 간 연봉 협상은 결렬 위기를 맞고 있었다. 양측은 핵심 쟁점인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기 싸움을 벌였다.

류현진은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적료만 2500만 달러를 넘게 적어냈던 다저스도 이 부분에서는 끝까지 난색을 표했다. 결국 협상 마감 시간인 오전 7시를 1, 2분 앞두고 다저스가 양보하면서 류현진은 극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류현진은 “팀 내 제2선발인 잭 그링키도 못 가진 권리를 얻어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류현진은 마이너리그 강등 걱정 없이 2013년 빅리그를 시작해 그해 14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안착에 성공했다.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마이너리그에 대한 공포를 없앴던 것도 류현진의 초반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그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양날의 칼이었다. 윤석민은 예리한 칼날에 희생을 당했다. 2014년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와 계약한 윤석민은 2015년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민의 빅리그 진입을 놓고 볼티모어가 고민에 빠졌다. 구위가 계속 못미더운 윤석민을 한번 메이저리그에 올려놓으면 마이너리그에 내려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볼티모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 계약 자체를 파기(지명 할당)하는 것이었다. 윤석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이너리그 계약을 다시 해야 했다. 메이저리그 생존권을 보장해줄 걸로 믿었던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오히려 메이저리그 진입을 가로막은 독소 조항이 된 것이다.

올 시즌 한국 선수들의 빅리그 러시가 이뤄지면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현수는 그 권리를 확보한 반면 박병호와 오승환은 따내지 못한 게 화제가 되고 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유무에 따라 잘된 계약, 잘못된 계약으로 나뉘는 분위기다.

그런데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여전히 완벽한 안전장치가 아니다. 김현수는 윤석민과 달리 입단 첫해인 올해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기 때문에 물론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 때문에 스프링캠프 때 더 큰 부담을 가질 수도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줘야 25인 로스터에 진입할 수 있다. 구단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고 있는 선수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도 분명히 있다. 협상 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고수하면 그 대가로 연봉이 줄어들 수 있다. 또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 류현진은 그 위기를 넘겼지만 김광현(SK)은 샌디에이고와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국내로 유턴했다.

이번 시즌 빅리그 마지막 주자로 예상되는 이대호도 마이너리그 거부권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생각만큼 실효성이 크지 않고, 치러야 할 보험료도 적지 않은 이 권리 때문에 협상이 늦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양날의 칼에 집착하느니 새로운 시즌에 더 집중하는 것이 빅리그 생존에 더욱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류현진#마이너리그#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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