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View]배영수, 잘 던져도 못 던져도 이기고…잘 던져도 못 던져도 못 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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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15일 07시 00분


삼성 배영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삼성 배영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행운과 불운의 두 얼굴…‘푸른 피의 에이스’ 삼성 배영수

올해 잘 풀리나 했는데 한 치 앞도 모를 야구
수술 후 곧게 펴지지 않는 팔…장애 6급 수준
150km 못 던지지만 아직 스피드 포기 안 해

현역 최다승? 거봐요, 비운의 투수는 아니죠
삼성 역대 최다승-2…다시 치고 나갈 계기로


배영수(32·삼성)만큼 롤러코스터를 타는 야구인생도 있을까. 2004년 17승2패(방어율 2.61)로 다승왕을 차지하면서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던 그는 2007년 1월 팔꿈치인대접합 수술 후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승(방어율 3.21)을 거두며 7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투수가 되면서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런데 올 시즌도 롤러코스터다. 3월 30일 시즌 개막전(대구 두산전) 선발투수로 낙점됐지만 만루홈런 2방을 맞으며 3.2이닝 8실점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이후 5월 25일까지 7연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며 다승 단독1위로 내달렸다. 또 시련이 닥쳐왔다. 이후 1승도 추가하지 못하며 전반기를 마치고 말았다. 배영수는 이에 대해 “내가 참 웃긴 기록이 많다”며 “올해는 야구가 잘 풀리는가 했는데 인생만큼 야구도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11일 대구에서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를 만났다.

-시즌 초반 9경기에서 무려 7승이나 챙겼다.

“누군가 ‘야구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개막전만 빼면 8번 등판해서 7승을 챙겼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잘 던져도 이기고, 못 던져도 이겼으니 말이다.”

-시즌 첫 승(4월 7일)부터 시즌 7승(5월 25일)까지 49일이 걸렸다. 그런데 이후 전반기 마지막 등판인 7월 10일까지 46일 동안 7경기(선발 6경기)에서 승리가 없이 2패만 당했다.

“2경기는 좋지 않았고, 4경기는 퀄리티스타트를 했지만 승리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잘 던져도 못 이겼고, 못 던져도 못 이겼다. 어쩌겠는가. 6월부터는 기술로 불운을 뚫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답답하지 않은가.

“솔직히 답답하다. 하지만 2009년(1승12패)에도 살았는데, 살 만하다. 하하. 지금 게임 나가는 게 어디냐. 팬들은 내가 기복이 있다고 보실지 모르지만 난 지금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야구는 결국 내가 하는 거다. 나 스스로 납득이 가는 경기였나, 아니었나가 중요하다.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을 두고 스스로 질책도 하고 칭찬도 하고 그런다. 그리고 다음 경기를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인생을 달관한 것 같다.

“한번 힘들고 보니까, 잘 한다고 어깨에 힘들어갈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더라. 지나고 보니 2009년엔 필요 이상으로 기가 죽어있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도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미스(실수)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역투(逆投)’가 많았다. 흔히 말하는 컨트롤 미스다. 타자에게 맞을 때 보면 대부분 포수의 사인 반대 코스로 들어갔다. 투수는 잘 던지다가도 하나의 실투로 승리를 날리는 법이다. 그래서 야구가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현역 최다승 투수다. 통산 109승을 기록 중이다.

“사실 신경도 안 썼는데 이것도 아홉수인가? 하하. 그러고 보면 나보다 승리 못한 투수도 많은데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비운의 투수’라는 말 안 했으면 좋겠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2승을 더 하면 김시진 감독(롯데)이 보유하고 있는 역대 삼성투수 개인통산 최다승 기록과 타이다.(김시진 감독은 삼성에서 111승, 롯데에서 13승을 추가해 개인통산 124승을 기록한 뒤 은퇴했다)

“김시진 감독님은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투수 아니냐. 그 기록에 다가섰다는 사실 만으로도 영광이다. 삼성 역대 최다승 투수라는 기록은 내가 다시 치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동력이 될 것 같다.”

삼성 배영수가 대구구장 덕아웃에서 2007년 1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아 더 이상 곧게 펴지지 않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이재국 기자
삼성 배영수가 대구구장 덕아웃에서 2007년 1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아 더 이상 곧게 펴지지 않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이재국 기자

-삼성 얘기를 해보자. 올 시즌 전반기에 여전히 1위를 달리지만 마운드가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그렇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나 삼성 투수들은 항상 ‘우리가 최고다’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 게임 무너진다고 계속 무너지지는 않는다. 외국인투수 2명이 좀 부진하지만 나하고 윤성환, 장원삼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3명이 은근히 경쟁의식도 있다. 불펜투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쟁의식이 우리 팀 마운드가 버티는 힘이 아닌가 싶다.”

-서로 보면서 배울 점도 있을 것 같다.

“둘을 보면서 많이 느낀다. 다 결정구들이 있다. 성환이는 커브가 좋고, 원삼이는 슬라이더가 좋은데 이젠 체인지업도 좋다. 둘 다 기본적으로 컨트롤이 된다. 요즘엔 구속이 150km, 160km라도 한가운데 들어가면 타자들이 다 친다. 나도 예전에 150km 던져봤지만, 150km만 던진다고 20승 하는 투수 누가 있나. 공 스피드보다는 상하좌우를 공략할 수 있는 컨트롤이 더 중요하다. 성환이나 원삼이는 그게 되는 투수들이다.”

-장원삼과 룸메이트 아닌가. 같이 생활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우나도 같이 가고 그러는데 원래 재미있는 후배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그냥 웃겨 보여도 알고 보면 원삼이는 진짜 똑똑하다. 그런데 우리 팀 투수들 대부분은 똑똑하다. 윤성환도 그렇고, 오승환도 그렇고, 권혁도 그렇고…. 안지만도 센스가 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있는 거다.”

-팬들은 아직 150km 강속구를 던지던 배영수를 못 잊는 것 같다.

“150km 못 던진 지 오래 됐지만, 그래도 140km 중후반까지는 끌어올렸다. 사실 지금 나보다 빠른 공 던지는 투수가 몇 명이나 되나. 이 구속도 남들에게 밀리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스피드에 대해 포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술한 전력도 있고, 현실을 봐 줬으면 좋겠다. 오버를 하면 탈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윤성환과 함께 팀 마운드의 맏형이다.

“그렇다. 하지만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33세고, 만 32세다. 이상하게 내 나이 아시는 분이 별로 없더라. 심지어 노장이라는 말까지 나오더라. 내가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아픈 건 팔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아팠던 선수로 보시는 분도 많다.”

-팔밖에? 투수는 팔이 생명 아닌가. 팔 때문에 최고 투수가 바닥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다. 지금도 걸어다닐 때 보면 팔은 구부러져 있는 것 같은데.

“팔은 이제 곧게 펴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장애인 검사 받으면 6급 판정 나올 것 같다면서 검사 받아보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보다 더 불편한 몸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야구선수 중에 팔 안 펴지는 사람 의외로 많다. 물론 나도 팔에 대해 예민하기는 하다. 작년만 해도 여름에도 긴팔을 입었다. 그러나 올해는 반팔 언더셔츠를 입고 던진다. 이제 괜찮다는 뜻이다.”

-목표를 물으면 팀 우승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20대 때는 인생이 시속 20km로 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내 나이처럼 세월이 시속 33km로 가는 것 같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하하. 솔직히 예전 어릴 때보다 지금 야구가 더 재미있다. 7월 말에 둘째가 태어난다. 그 전에 아홉수를 끊고 개인통산 110승을 채워 선물하고 싶다. 목표는 있어야한다. 다승왕에 대한 욕심은 지금도 있다. 후반기에 더 집중해 한번 연승 분위기를 타 보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나 스스로에게 떳떳해야한다. 요즘엔 마운드에 오를 때 항상 ‘오늘 나가는 게임이 마지막 게임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또 나에게 묻는다. ‘오늘 최선을 다 했느냐’고.”

대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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