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금광옥 “월급은 현찰, 연패때도 술판…삼미, 화끈했어”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7시 00분


인천야구의 상징적 인물인 금광옥 인천 동산고 감독(오른쪽 2번째)이 열성적으로 제자들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인천|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인천야구의 상징적 인물인 금광옥 인천 동산고 감독(오른쪽 2번째)이 열성적으로 제자들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인천|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첫 몇달간 은행 월급의 10배를 현찰로 팍팍
‘목욕탕 훈시’후 개막전 승…시작, 화려했지


18연패 땐 특훈 등 다 해봤지만 소용없었어
어느날 구단이 술판 벌이데, 마음껏 놀라고…

장효조도 두손 든 장명부 첫 인상 건들건들
돈 급했던지 30승 올인…완투 이튿날도 등판
피칭 전 온몸 튜브
로 꽁꽁 감싸던 모습 선해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가 됐다. 프로 원년 9홈런과 37타점을 올리며 팀의 주전 포수로 큰 활약을 했다. 삼미는 비운의 팀이었다. 그해 15승을 거둔 삼미의 승률은 여전히 역대 최저다. 1983년 고(故) 장명부가 만들어낸 돌풍에도 함께했다. 1985년 18연패에 빠졌을 때도 삼미를 지켰다. 선발투수가 조랑말을 타고 등장했던 청보 핀토스. 34세의 나이로 프로야구 감독이 됐던 허구연의 메이저리그식 실험도 경험했다. 1988년 태평양 선수로 ‘김성근 야구’를 접했다. 세뇌됐다. 오대산에도 갔다. 눈길을 걸었고, 얼음물에도 빠졌다. 이기는 것보다 진 기억이 많은 선수생활이었다. 1998년 지도자로 현대가 인천에 첫 우승을 안겼을 때 그 영광을 함께 했다. 누구보다 기뻤다. 현대가 프로야구에서 사라질 때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SK를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모교 동산고에서 마지막 봉사의 심정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금광옥(56). 굽은 소나무처럼 인천야구를 지켜온 그가 기억의 바다에 잠겨있던 팀과 선수들을 회고했다. 금광옥이 간직한 인천야구의 편린들을 2회에 걸쳐 되짚어본다.

○1000만원의 꿈, 27세에 프로야구의 푸른 꿈을 안다!

27세 때였다. 실업야구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가족과 이민을 떠났다. 모든 것을 정리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연락이 왔다. 프로야구가 생겼다고 했다. 삼미는 계약금 1800만원, 연봉 1800만원을 제안했다. 마음을 바꿨다. 한 달 만에 미국생활을 정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시민회관에서 화려한 창단식을 했다. 인천야구의 영웅 고(故) 박현식 감독이 초대 사령탑이었다. “상업은행에 다닐 때 1000만원만 있으면 은행을 관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계약금을 내가 다니던 은행에 입금하자 여자 행원이 놀랐다.” 삼미는 처음 몇 달간 현찰로 월급을 줬다. 은행에서 받던 월급보다 10배나 넘는 돈이 나왔다. “돈 많이 번다고 술 사달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초기 프로야구선수들은 다 그랬다.”

누구나 예상했던 꼴찌 후보 삼미의 시작은 화려했다. 1982년 3월 28일 대구에서 삼성과 원정으로 출발했다. 전날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MBC와의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9회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고 진 삼성을 상대로 5-3 승리를 거뒀다. 인호봉이 완투승을 거뒀다. 그 경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인천체전과 연습경기를 했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1-2로 졌다. 충격적이었다. 다행히 박 감독은 감독자 회의에 참가하느라 현장에 없었다. 경기 뒤 대구로 이동했다. 목욕탕에서 박 감독이 결과를 물어봤다. 대노했다. “명색이 프로야구팀이 대학 2학년들에게 졌다니 말이 되냐”고 했다. 목욕탕에서 들은 감독의 일장훈시는 삼성전 승리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삼미의 선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4월 24∼25일 OB와의 춘천 2연전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특히 25일은 3회까지 8-0으로 앞서다 11-12로 뒤집어졌다. 김현철 구단주가 지켜보던 경기였다. 인천야구의 영웅은 그 경기를 끝으로 물러났다. 전기 10승, 후기 5승. 그해 24승을 거둔 OB 박철순의 승수보다 9승 모자란 팀 승리를 기록한 1982년의 삼미는 초라했다.

일본에서 온 고(故) 장명부는 1983년 삼미 유니폼을 입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타격기계’로 통했던 고 장효조(삼성)가 대구 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환호했을 정도였다. 스포츠동아DB
일본에서 온 고(故) 장명부는 1983년 삼미 유니폼을 입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타격기계’로 통했던 고 장효조(삼성)가 대구 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환호했을 정도였다. 스포츠동아DB


○금광옥이 기억하는 삼미 슈퍼스타즈

꼴찌팀일수록 사연은 많았다. 삼미하면 떠오른 것이 1985년의 18연패다. 3월 31일 롯데 박동수에게 완봉승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4월 30일 최계훈이 MBC에 완봉승을 거둘 때까지 한 달간 이겨보지 못했다. 이래도저래도 안 되는 때였다. 한번은 주장 정구왕이 버스 안에서 선수단 미팅을 실시했다.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단체로 삭발이라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장명부가 반대했다. “야구하고 머리하고 무슨 상관이냐”며 따졌다. 결국 단체삭발도 하지 못했다. 연패가 이어지자 구단도 다양한 방법을 썼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도 뿌려보고 특별훈련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연패 도중이었다. 구단이 호텔에 선수들을 모두 모았다. 큰 방에 선수들을 다 집어넣은 뒤 밤새도록 술을 마시라고 했다. 밴드도 불러줬다. 마음대로 놀고 마시라고 한 적도 있었다.”

삼미에는 기억해야 하는 선수도 많았다. 오문현. 1982년 후반기에 입단해 무지막지하게 던졌던 투수. 골초였다. 외야에서 러닝훈련을 할 때 담배를 물고 뛰었다는 전설의 남자. 이닝 사이에 담배 두 개비 이상을 피우고야 마운드에 섰다. 현재 가족과 호주에서 살고 있다. 공교롭게도 담배에 대한 규제가 가장 센 호주다. 1982시즌 후 방출된 11명의 삼미 선수 가운데는 고(故) 김동철도 있었다. 인하대를 중퇴하고 프로야구에 꿈을 품었으나 1승8패1세이브의 성적만을 남기고 방출된 뒤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1983년 4월 1일 인천구장 인근의 철도에 투신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금광옥(오른쪽)은 최하위팀 삼미의 주전포수로 활약했다. 스포츠동아DB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금광옥(오른쪽)은 최하위팀 삼미의 주전포수로 활약했다. 스포츠동아DB


○고(故) 장명부와 김진영

1983시즌을 앞두고 장명부가 왔다. 첫 인상은 그저 그랬다. 금광옥의 회고. “숭의동 야구장 앞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훈련할 때였다. 잘 씻지 않는 듯 지저분했다. 러닝도 안했다. 저런 선수가 있나 싶었다. 피칭훈련을 하라고 해도 캐치볼로 슬슬 15개 정도만 던지고 끝냈다. 김진영 감독과 다른 선수들이 황당해했다. 실력을 믿을 수 없었다. 속았다는 분위기였다.”

삼미와 계약하기 전 일본의 삼성 전지훈련장에 나타나 배팅볼을 자원해 던졌던 장명부였다. 인천구장에서 훈련 도중 간간이 파울라인 근처로 혼자 공을 굴려보며 어디로 타구가 흐르는지 직접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연습도 일찍 마치고 먼저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따로 개인훈련을 했던 모양이다. 워낙 비밀을 좋아했다. 시즌 개막 전날이었다. 부산 구덕구장이었는데 장명부가 갑자기 공을 던지겠다고 했다. 처음이었다. 곧바로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받았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스피드, 컨트롤, 변화구 모두 완벽했다. 김진영 감독과 선수들이 놀랐다. 그동안 우릴 속인 것이었다.”

1983년 장명부의 피칭은 센세이션을 낳았다. 프로 초창기인 우리 타자들을 가지고 놀았다. 30타석 이상 무안타였던 고(故) 장효조가 대구 경기에서 안타를 친 뒤 두 손을 들고 환호했을 정도였다. “한국에 왔을 때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30승에 목을 매고 던졌다. 완투하고 다음날 또 던졌다. 몸 상태는 좋지 않은 듯했다. 피칭 전에 몸을 튜브로 꽁꽁 감싸고 던진 뒤에도 어디가 아픈지 온 몸을 랩으로 감싸고 테이핑을 했다. 그런 것을 처음 봤다.”

그해 삼미의 주전 포수는 금광옥에서 고(故) 김진우로 교체된 상태였다. 김진영 감독은 김진우의 강한 어깨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 스타였으니까 주장이 강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장명부가 나를 따로 부르더니 2루로 공을 던져보라고 했다. 연습해도 2루 송구가 빠르지 않자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장명부가 등판한 날 마스크를 썼다. 6회에 김진우와 교체되는데 장명부가 나를 불렀다. ‘너 대단하다. 너처럼 공격적인 리드를 하는 포수는 처음 본다. 고맙다’고 했다.”

금광옥은?

▲생년월일=1956년 12월 19일
▲출신교=동산고
▲포지션=포수(우투우타)
▲프로선수 경력=1982년 삼미∼1985년 청보∼1988년 태평양
▲프로통산 성적=7시즌 413경기 1164타수 273안타(타율 0.235) 29홈런 125타점 113득점
▲지도자 경력=1992년 태평양 코치, 1996년 현대 코치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