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영웅 7년…FA컵 빼고 다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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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0일 07시 00분


희로애락으로 풀어본 산소탱크 박지성의 맨유맨 7년




맨유 유니폼 입고 200경기 출전
실력으로 검증된 亞 대표 선수로




08년 챔스 맹활약불구 결승전 제외
亞 출신 ‘이방인 취급’에 마음고생




06년·07년 두번의 수술로 공백
잦은 장거리이동…국대 은퇴로




유럽챔스리그 1회·리그 4회 우승
QPR에서 FA컵 ‘우승 키스’ 목표

‘아듀, 박지성’

박지성(31)의 이적이 공식화됐다. 퀸즈파크레인저스(QPR)는 9일 밤(한국시간) 런던 밀뱅크 타워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지성 영입을 발표했다. 지난 7년 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박지성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스타였다. 그가 발을 내딛는 순간이 곧 역사였다. 물론 화려함 뒤에 숨은 고통도 있었다. 세계 최고스타들이 즐비한 맨유에서 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생활한 7년을 ‘희로애락’으로 돌아봤다.

○희(喜)

박지성은 2월6일 첼시 원정에서 후반 39분 교체 투입돼 맨유 2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2005년 8월 데브레첸(헝가리)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른 후 3년4개월 만인 2008년 12월 토트넘 전에서 100경기 출전, 다시 3년2개월 만에 200경기에 출전했다. 박지성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과거 맨유에서 뛰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수 중 박지성에 앞서 200경기를 돌파한 선수는 91명뿐이었다. 지금까지 맨유 유니폼을 입고 1경기라도 뛴 선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박지성이 앞으로 3시즌을 맨유에서 더 뛰면 300경기 출전이라는 ‘꿈의 기록’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팀을 옮겨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없던 일이 됐다.

○노(怒)

2008년 5월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첼시와 챔스리그 결승은 박지성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박지성은 AS로마(이탈리아)와 8강 1,2차전, 바르셀로나(스페인) 4강 1,2차전 등 4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했다. 경기 하루 전까지 대부분 영국 언론들이 박지성의 선발을 점쳤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챔스리그 결승 출전이 눈앞에 다가온 듯 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교체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퍼거슨 감독의 전술 변화로 박지성이 희생양이 됐다. 퍼거슨은 기존 4-3-3 대신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박지성 대신 하그리브스가 오른쪽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맨유는 정상에 올랐고 퍼거슨은 허를 찌른 전술로 또 한 번 칭송을 받았지만 박지성은 울었다. 그렇다 해도 박지성이 교체명단에 들지 못한 것은 여전히 의문. 박지성의 스타일과 성향이 조커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사석에서 만난 박지성 측근은 조금 다른 의견을 내 놨다.

“교체명단 중 그날 뛰지 못한 3명은 팀이 결승에 오를 때까지 거의 활약이 없던 선수들이었다. 공헌도로 따져도 박지성은 그들 대신 벤치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퍼거슨은 박지성이 아닌 영국계 선수들을 배려했다. 박지성은 중요한 순간 자신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애(哀)

박지성은 맨유에서 두 번 수술을 했다. 2006년 9월 토트넘과 경기 후 왼쪽 발목 인대 파열을 당해 수술을 했고 3개월 만에 복귀했다. 더 큰 부상은 2007년 3월 말에 찾아왔다. 그 시기 박지성은 애스턴빌라 1골1도움, 찰턴 1골, 볼턴 2골(첫 멀티 골), 블랙번 1골1도움을 올리며 펄펄 날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번 전 직후 무릎 이상이 밝혀져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박지성은 2007년 4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이 분야 최고 권위자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 집도 하에 무릎 연골 재생수술을 받았다. 박지성은 1년 이상 걸린다는 재활을 3개월 단축해 9개월 만에 그라운드에 섰다. 무릎 수술 후유증은 남아 있다. 연속 출장이나 반복된 장거리 이동 등으로 무리하면 무릎이 붓는다. 박지성이 많지 않은 나이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QPR에서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락(樂)

박지성은 우승과 인연이 많다. 특히 맨유라는 세계 최고 구단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그 우승 4회, 챔스리그 우승, 리그 컵, FIFA 클럽월드컵까지…. 우승에 관한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렸다. 그러나 FA 우승은 한 번도 없다.

QPR은 맨유처럼 우승권 전력은 아니다. 박지성은 어쩌면 은퇴까지 리그 정상에 서는 환희를 다시는 맛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지성이 QPR의 중심 선수로서 유독 인연이 없었던 FA컵 정복에 성공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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