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의 투수탐구] 롯데의 철벽 마무리 김사율

  • Array
  • 입력 2012년 2월 3일 07시 00분


“칠테면 쳐봐라” 생각변화로 안정감
릴리스 높인 뒤에 포크볼·커브 위력
‘만년 기대주’ 꼬리표 떼고 성공시대
번트수비·도루허용·실투 등 아쉬워

롯데 불펜은 정대현의 가세로 훨씬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환경은 김사율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마무리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지만 양승호 감독이 김사율을 마무리로 낙점한 상태이기에 세이브왕에 도전할 수  찬스이기도 하다. 스포츠동아DB
롯데 불펜은 정대현의 가세로 훨씬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환경은 김사율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마무리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지만 양승호 감독이 김사율을 마무리로 낙점한 상태이기에 세이브왕에 도전할 수 찬스이기도 하다. 스포츠동아DB
그래, 새가슴이 문제였어
배짱 키우니 만사형통이야

프로 입단 후 10년간 평균 1승밖에 거두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난해 마무리투수로 팀이 페넌트레이스 2위에 안착할 수 있도록 현격한 공을 세우며 두각을 드러냈다. 올해에도 롯데의 마무리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사율 얘기다. 그는 1999년 롯데 마운드의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단했다. 그러나 2002년 4승11패, 180.1이닝을 소화한 것을 제외하고 2010년까지 근근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수준의 선수로 전락했다. 2005년과 2006년 군공백이 있었지만, 훈련에 비해 실전에서 유독 약한 모습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김사율은 1998년 경남상고(현 부경고) 시절 대통령기 경남고와의 결승에서 1회부터 12회까지 220구 이상을 던지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구력이 굉장히 좋았고 결정구로 쓰던 낙차 큰 커브가 매력적이었다. 고등학생으로는 투구폼도 안정돼 있었고 마운드에서의 침착한 모습까지도 대견해 보였던 기억이 있다.

김사율은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능력이 있었지만 프로선수를 상대로 성적을 올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스피드가 눈에 띄게 빠른 것도 아니고 제구력도 내세울 만하지 못했으며 낙차큰 커브도 완벽한 주무기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 스프링캠프에서는 ‘이제는 뭔가 될 것 같다’는 기대를 걸게 만드는 선수였지만 한 번 잃은 자신감이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워낙 성실하게 생활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선수이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2010년 1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5세이브 5홀드를 기록하면서 마지막 기대를 하게 했고, 결국 2011년에는 환골탈태했다. 66.1이닝 5승3패 20세이브 2홀드 방어율 3.26을 기록하면서 롯데가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필자는 시범경기부터 마무리로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후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때 김사율은 “마운드 위에서 편안히 던지겠다”는 아주 짧지만 많은 것이 함축된 대답을 건넸다. 11년 선수생활 중 7년을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왜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안 될까’라고 답답해했던 모든 것이 그 한마디로 풀렸다. 물론 지난 시즌 초반도 기대만큼 잘 풀리지는 않았다. 본인의 생각과 의지처럼 상대 타자들은 만만치 않았다. 김사율을 타자들은 위협적이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바꾸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기술, 그리고 마음

김사율은 체격이 뛰어나지 않고 신장도 투수치고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182cm·78kg). 투수는 ‘릴리스포인트를 타자 쪽으로 더 많이 가져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조금 높은 곳에서 각도를 만들면서 던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에 강점이 있는 투수는 타점이 낮아도 타자들이 공을 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조금 더 앞쪽에서 던지는 것이 좋지만, 변화구의 각도를 주무기로 삼는 투수는 타점을 위에서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김사율은 빠른 직구보다는 포크볼, 커브로 타자를 잡아내는 형태의 투수다. 공을 던지기 위한 자세에서 한 발을 들어올리고(리프팅) 내리면서 스트라이드하는 동작에서 뒷다리가 많이 굽혀진다. 뒷다리가 내려간다는 것은 결국 전체적인 자세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타점이 낮아지게 되므로 변화구의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스프링캠프에서 뒷무릎이 무너지는 자세를 보정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경기를 하면서 번번이 옛습관이 나와 좋았던 구위가 흔들리는 현상이 생겼다. 지난 시즌의 경우엔 새로운 투구폼이 확실히 자리를 잡으면서 안정감을 찾게 됐다.

흔히 코치가 투수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투구시 공에 자신의 혼을 넣어라!’다. 공에 혼이 들어가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같은 140km를 던진다고 했을 때 ‘칠 테면 쳐봐라’라는 생각으로 던지는 것과 ‘이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 어떻게 하나. 타자가 이 공을 노릴 것 같은데. 여기서 안타를 맞으면 교체될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던지는 것은 천지차이다. 결과도 상반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김사율은 지난해 강한 생각을 가지고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셈이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한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는 반드시 다음 시즌 상대의 집중견제를 받게 된다. 특히 침체기를 겪다가 한 시즌을 잘 보낸 후 곧바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프로 입단 때나 호성적을 거둔 지난해 김사율의 구위는 큰 변화가 없었다. 스피드가 갑자기 빨라졌다거나 제구가 더 완벽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포크볼이 위력적이었으며 낙차 큰 커브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좋은 무기가 됐다.

김사율은 올시즌 입단 12년차다. 앞으로 더 빠른 공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즉, 가지고 있는 공으로 좀 더 정확하게 던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 시즌에는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는 현상이 자주 있었다. 타자들은 투구의 패턴이 변화구 타이밍일 때 이를 노릴 경우가 많다. 그 때는 실투가 용인될 수 있지만 직구는 다르다. 올시즌이 지난 시즌처럼 행운이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다.

올시즌 롯데는 이대호-장원준이 빠진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선수들이 합류했다. SK에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정대현이다. 그는 롯데를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김사율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라이벌의 생긴다는 의미다. 또 한 번의 힘든 싸움을 예상할 수 있다. 누구에게 마무리 보직이 주어질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지난 시즌 잡았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수로서 명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7개 구단 타자의 장단점을 머릿속에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본인과의 대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 3경기, 6경기의 컨디션 그리고 타격의 변화도 숙지해야 한다.

번트수비 능력도 길러야 한다. 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타구도 실수 하나로 경기를 망칠 수 있다. 상대는 아웃카운트를 하나 늘리면서 희생번트로 주자를 보내기 위해 작전을 건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들이 쉽게 도루를 허용한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1점을 지켜야하는 마무리 투수로서는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사율은 도루 허용이 많은 편이다. 투구폼이 크고 느리기 때문이다. 강민호라는 강한 어깨를 가진 포수가 있지만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도루저지율을 높이지 않으면 힘든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1999년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사율을 가장 좋아했다. 전지훈련을 가면 대개 신인선수들이 빨래를 정리하곤 했는데 그때 김사율이 호세의 옷가지를 챙겨주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피부도 까무잡잡했기 때문에 ‘형제’라고 불렸다.

길고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꿈에 그리던 빛을 보게 된 늦깎이 선수.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라이벌이 등장하는 등 앞으로도 순탄치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이제 야구를 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벌써 여러 번은 포기했을만한 어려운 과제를 묵묵히 이겨냈기 때문이다.

김사율을 보면서 ‘나는 가수다’를 떠올린다. 재야에 묻혀있다가 재발견돼 행복해하는 몇몇 가수들을 보며,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선수보다 고생 끝에 행복을 찾은 선수들이 좀 더 오랫동안 뛰어난 성적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매년 뒷문지기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롯데 마운드에 강력한 마무리 투수의 모습을 그려본다.

▲생년월일=1980년 4월 17일
▲출신교=김천초∼대신중∼경남상고
▲키·몸무게=182cm·78kg(우투우타)
▲프로 경력=1999년 신인 드래프트 롯데 2차 1번 지명·입단
▲2011년 성적=61경기 66.1이닝 5승3패 20세이브 2홀드 방어율 3.26
▲2012년 연봉=1억3000만원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