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기자의 끝내기 홈런]쉽고도 어려운 명장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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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일이란 비둘기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 너무 꽉 쥐면 비둘기가 죽는다. 반면에 너무 느슨하게 쥐면 달아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한국야구위원회에는 이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감독을 지낸 토미 라소다(84)가 선수 관리를 두고 한 명언이다.

라소다는 다저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다저스에서 투수와 코치를 거쳐 1976년 감독에 올랐다. 1996년 심근경색으로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1981년과 1988년 월드 시리즈를 이끈 명장이었다. 감독 통산 1599승 1439패를 기록했고 1997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의 등번호 2번은 다저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라소다처럼 한 팀에서 선수부터 코치, 감독에까지 올랐다. 류 감독은 27일 취임 첫해 정규 시즌 우승을 이끌며 단번에 명장 대열에 올랐다. 그는 “감독이 돼서도 코치처럼 선수를 대했다”고 했다. 선수들의 실수를 질책하기보다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감독의 진심은 선수단을 하나로 만들었다. 삼성은 올 시즌 최강의 자리를 꿰찼다.

반면에 다른 구단에선 벌써 찬바람이 불고 있다. A구단은 감독과 선수단의 불화가 심각해 감독의 지시마저 따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B구단 역시 올 시즌 성적에 따라 사령탑을 교체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라소다처럼 한 팀에서 20년이나 사령탑을 맡는 건 드문 일이다. 국내에선 해태(현 KIA)에서 18년간(1983∼2000년) 감독을 했던 김응용 삼성 고문이 최장기 사령탑이었다. 프로야구 출범 후 30년간 8개 구단에서 55명의 감독이 바뀌었다.

감독은 힘든 자리다. 라소다의 말대로 선수를 강하게만 다뤄도, 자유롭게 풀어주기만 해도 안 된다. 때로는 군기반장처럼, 때로는 친형처럼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승부처에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성적이 좋으면 명장으로 인정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옷을 벗을 수 있는 ‘양날의 칼’ 같은 자리다. 그런 면에서 류 감독은 행복한 사람이다. 정규시즌 우승 직후 “내 예언대로 됐다”던 그가 한국시리즈에서도 활짝 웃을지 기대된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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