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어머니 박승순씨가 말한 ‘내 아들 류현진’

동아닷컴 입력 2010-09-20 07:00수정 2010-09-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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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환 먹고 지켜본 첫승, 현진인 떨지도 않더라고”
대한민국 에이스∼ 부모의 사랑과 헌신 속에 쑥쑥 자란 아들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두 최고로 평가받는 대한민국 대표 에이스로 성장했다. 스포츠동아DB
현대 어린이회원 류현진 형 현수(왼쪽) 씨와 류현진은 인천 연고팀인 현대의 열성팬이었다. 형제가 나란히 어린이회원용 유니폼을 입고 야구선수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슈퍼스타 K? 초등학교 5학년 때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유소년야구대회에 참가했다. 방콕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라, 국가대표와 똑같은 ‘K’ 모자를 쓰고 즐거워했다.
방망이도 괴물타 어릴 때부터 방망이도 남들보다 잘 쳤다. 늠름한 동산중 4번타자의 모습.
초고교급 괴물투 동산고는 2005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0-8로 뒤지다 10-8로 역전해 우승했다. 류현진의 전력투구도 빛났다. 아버지는 “현진이가 이 경기를 좋아해서 아직도 가끔 비디오테이프를 찾아본다”고 귀띔했다.
꼬마괴물, 틈만나면 캐치볼하자 졸라
중·고시절 ‘1학년 에이스’ 전국 호령!
2004년 팔꿈치 인대부상 수술 첫 시련

1년재활도 묵묵히 이겨낸 강심장 아들
돈 버는 것보다, 세계신 세우는 것보다
엄마는 그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게
1987∼2010 ‘괴물투수 류현진 성장기’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계속 뒷좌석을 흘끔거렸다. 건장한 아들과 함께 앉은 어머니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가을, 한화가 다음 시즌 신인들을 숙소로 불러들인 날. 20년 가까이 공들여 키운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기 위해, 부모는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16일. 어머니 박승순(51) 씨는 인천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또 한 번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나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채 말을 잇지 못하자 아버지 류재천(54) 씨가 도왔다. “대전에 도착해 아이를 들여보내는데, 구단에서 ‘이제 우리에게 믿고 맡겨달라’고 하시더라고. 아, 이제 우리 아들이 진짜 프로 선수가 됐구나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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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프로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던 아들 류현진(23)은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됐다. 그의 부모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재능 있는 어린 아들이 ‘괴물 투수’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부모의 헌신이 없었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아들따라 베이징까지 2008베이징올림픽을 현장에서 함께 한 아버지 류재천 씨(왼쪽)와 어머니 박승순 씨. 부모는 아들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지켜봤다.

○어린 현진(賢振)의 놀이터는 야구장

장손인 형 현수(26)의 이름을 작명소에서 받아왔던 할아버지는 둘째가 태어나자 “부모가 직접 지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책상에 커다란 옥편을 펼쳐두고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그런데 그 하고 많은 한자 중에 갑자기 ‘떨칠 진(振)’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어머니도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보다”며 웃었다.

세 살 터울의 형제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야구와 함께 살았다. “말 잘 들으면 주말에 야구장 간다”고 한마디만 하면 일주일이 편했다. 틈만 나면 마당에서 캐치볼을 하자고 졸랐고, 야구 배트를 든 채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버지 역시 아들들과 놀아주는 게 낙이었다. 이웃집 아이 엄마가 “현수랑 현진이 아버지 좀 본받으라”고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만큼.

○엄마는 ‘감독님’, 아빠는 ‘코치님’

부모는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1999년 9월 26일.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는 야구부가 있는 창영초등학교로 전학하면서 소원을 이뤘다. 반대한 사람은 어머니뿐. 운동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일단 야구를 시작한 후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학부모회 총무를 맡았고, 매일 학교에 들러 수십명의 야구부원들 밥을 챙겨 먹였다. 아버지는 웃었다. “애엄마가 처음엔 전광판의 S(스트라이크), B(볼), O(아웃)가 뭘 뜻하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아들 따라다니다 박사가 다 됐지. 현진이가 엄마한테 장난 삼아 ‘감독님’이라고 부른 적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버지는 코치였다. 마당의 배나무에 고무줄을 묶어놓고 수시로 어깨 강화를 위한 튜빙을 시켰다.

당시 스타였던 조성민의 아버지가 어릴 때 탁구공 토스배팅을 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넌 골프공으로 하자”며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폐공을 모아왔다. 집에 그물 연습망 설치는 기본. 전기 전문가인 삼촌의 도움으로 옥상에 야간훈련용 라이트도 달았다. 근육을 풀어주는 청주 반신욕은 원정경기 때도 꾸준히 하게 했다. ‘지극정성’이란 이런 걸 말한다.

덕분에 류현진은 처음부터 ‘류현진’이었다. 3학년 꼬마가 6학년 형들과 나란히 경기에 나서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만큼 월등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그는 ‘1학년 에이스’였다. 그런데….

○끊어진 인대와 수술, 괴물의 첫 시련

2004년 미추홀기 고교야구대회. 형들 대신 4승을 모두 책임진 뒤 팔꿈치에 탈이 났다. 오진 때문에 초기 대처도 제대로 못했다. 뒤늦게 “인대가 너덜너덜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 던지는 아들의 전 재산. 누구보다 꼼꼼하게 관리해왔던 귀한 팔. “심장이 철렁했냐고? 아이고, 그 정도로는 표현할 수도 없어. 그냥 세상이 무너진 거야.” 아버지는 격분했다. 어머니도 망연자실했다. 그 때 의연한 아들이 말했다. “빨리 수술 받자. 병원도 알아왔어.”

수술은 짧았다. 그러나 재활에 1년이 걸렸다. 오전 7시에 인천에서 좌석버스를 타면, 2시간 20분이 지나야 서울 강남의 병원 앞에 내렸다. 아들은 왕복 네 시간 길을 불평 한 번 없이 묵묵히 오갔다. 집에 돌아오면, 형이 인조잔디가 깔린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동생을 데려갔다. 지루해 할까봐, 함께 달려줬다. 형은 지금 미국 뉴욕에 유학 중이지만, 형제는 여전히 깊은 우애를 자랑한다. 아버지는 “현진이가 우리 몰래 형에게 용돈도 보내줬다더라”며 먹먹해 했다.

○청심환 먹고 지켜본 첫 승 “세상을 다 얻었다”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 선발 투수로 신인 류현진이 예고됐다. 잠실구장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가슴은 격하게 뛰었다. “결국 청심환까지 사먹었어요. 팔꿈치 수술을 받았을 때 생각도 나고, 만감이 교차해서….” 하지만 아들은 떨지도 않았다. 7.1이닝 무실점 10탈삼진.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해 최우수선수와 신인왕 석권.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지, 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 수술 때문에 2차지명으로 밀렸던 서운함도 사라졌고 말이야.”

그 후 4년이 더 흘렀다. 류현진은 여전히 강하다. 아니, 최강이다. 12년 만에 1점대 방어율(1.82, 192.2이닝 38자책점)을 마크했고, 올 시즌에만 23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성적 가지고 아이한테 얘기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잘 했든 못 했든, “수고했다”와 “고생했다”가 전부다. 세상이 류현진의 기록 행진에 열광할 때, 부모는 그 뒤에 감춰진 아들의 긴장과 부담감을 보기 때문이다.

○아들 따라 삼만리 “건강해라, 내 아들!”

부모는 아들이 공을 던지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라도 갔다.

지금은 고속철도라도 생겼지만, 예전에는 새마을호 막차에 몸을 실었다가 영등포역에서 새벽 총알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게 다반사였다. 아들이 국가대표 단골이 되면서, 이제는 비행기도 자주 탄다. 11월에는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광저우에도 갈 생각이다.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현진이가 야구를 안 하는 겨울에는 내가 낙이 없어서 갱년기 증상까지 와요.” 아버지가 거들었다. “우린 그냥 ‘엄마 아빠가 못 해줘서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못 했다’는 말은 절대 안 듣게 하려고 했을 뿐이야.”

돈을 많이 버는 아들도, 세계 기록을 세우는 아들도 바라지 않는다. 부모는 그저 아프지 않고 씩씩한 아들, 좋아하는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아들이면 족하다. 지난 어버이날, 아들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낳으실 제 괴에로움∼”하고 노래를 부르다 픽 웃어버렸다. 그리고 쑥스럽게 말했다. “건강하세요, 엄마.” 가족은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만 있어 주면 된다. 부모도 자식도 한 마음이다. 그래서 가족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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