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① 박지성] 31.5kg 초등생…엄마의 한숨에 사슴피도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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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6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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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7’과 ‘노란 완장’은 이제 한국대표팀의 상징이 돼 버렸다. 박지성은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을 노리는 허정무호의 핵심 전력이다. [스포츠동아 DB]
‘등번호 7’과 ‘노란 완장’은 이제 한국대표팀의 상징이 돼 버렸다. 박지성은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을 노리는 허정무호의 핵심 전력이다. [스포츠동아 DB]
2010남아공월드컵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이어 한국 축구 역사에 또 다른 신기원이 될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다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는 땀과 열정으로 ‘감동의 6월’을 준비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의 라이프스토리를 소개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허정무호의 ‘캡틴’인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1991년 5월 22일. 세류초등학교 5학년, 열한 살 소년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는 근사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형들이 태국과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아시아지역 3차 예선 D조 3차전이었다. 한국은 서정원(현 올림픽대표팀 코치)의 터닝 강슛에 이어 한정국(현 부산 아이파크 사무국장)의 오른발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그러나 소년에게 ‘한국의 승리’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유니폼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을까’란 생각만 가득했다.

꼭 19년이 지난 2010년 5월 24일. 호랑이 무늬 유니폼을 입고 ‘투혼’을 심장에 새긴 소년은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에서 벼락같은 오른발 강슛으로 ‘울트라 닛폰’을 침몰시켰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관중석을 응시했다. 왼쪽 팔의 노란색 완장이 빛났다. 그는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노리는 허정무호의 ‘캡틴’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초등학교때 수·우 받던 모범생이었지만
늘 왜소한 체격 걱정…보양식 마다 안해


○‘우수학생’ 박지성

초등학교 시절 박지성은 ‘우수’한 학생이었다.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6년 내내 전 과목에 걸쳐 수와 우 뿐이다. 단 한 번, 5학년 사회 과목에서 미를 받았는데 그가 일기장에 썼듯 6학년 반장선거에 나가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 박지성은 이미 5학년 때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써 봤다. 그 때 너무 힘들어 차라리 반장이 안 된 게 낫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특히 체육과 음악 과목에서는 한 학년만 빼고 모두 수를 받았다. 예체능에 소질이 있긴 있었던 모양.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뒤 2007년 무릎 연골 재생 수술을 받고 재활할 때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기도 해다.

그의 일기장에는 축구와 관련된 내용이 유독 많다. 그날 배운 전술을 복기하거나 훈련이 힘들 때마다 글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여간해서 크지 않는 키는 늘 걱정이었다. 지금의 박지성은 178cm, 73kg의 균형 잡힌 체격을 자랑한다. 프리미어리그 거구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덕분에 팔뚝이나 가슴 근육도 탄탄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는 145.6cm 31.5kg의 왜소한 편이었다. 일기장에 ‘중학교에 못 가면 어쩌나 어머님이 그렇게 걱정하시는 줄 몰랐다. 걱정을 풀 수 있는 길은 밥을 많이 먹는 것 뿐이다’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지성의 키를 크게 하려고 아버지 박성종(50) 씨가 개구리를 달여 먹였다는 일화는 잘 알려졌다. 사실 먼저 입에 댄 보양 식은 사슴피였다. 일기장에 ‘선생님은 어디가시고 나는 사슴피를 먹고 있는데…’란 대목이 나온다. 성인도 쉽게 먹기 힘든 사슴피를 꾸역꾸역 목으로 넘겼다. 그러고도 별반 효과가 없어 수원공고에 입학할 때도 고작 158cm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구리 즙을 마시기 시작했고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20cm 가까이 자랐다.
 

투표로 당당히 차지한 5학년 주장 완장
그때 이미 온화한 리더십…준비된 캡틴


○5학년 주장이 대표팀 캡틴으로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박지성과 ‘주장’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 됐다.

기존의 카리스마 넘치는 주장의 모습이 아닌 온화한 ‘박지성 리더십’이 화제가 됐다.

그가 처음 완장을 찬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당히 투표를 통해 뽑혔다. 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던 건지 6학년 때도 주장으로 선임됐다.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사항에도 ‘언행이 바르고 친절하며 친구들의 신뢰를 받고 있음(5학년)’ ‘집단이 결정한 사항은 꼭 지킴(6학년)’이라는 평이 있다.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이 된 뒤 선수단에 몇 가지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전까지 코칭스태프끼리 공유하고 당일이나 돼야 통보되던 훈련 스케줄이 ‘선수들도 미리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박지성의 건의에 따라 전날 공지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과 호흡은 한국이 남아공월드컵 예선을 무패로 통과하고 월드컵 16강을 노릴 만큼 강한 전력을 갖추는 데 밑거름이 됐다.
 

김남일·안효연·정경호…소중한 인연
희로애락 평생 함께 나눌 삶의 활력소


○좁지만 깊은 ‘인(人)라인’

박지성의 인라인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평생을 축구에만 매달려 살아왔으니 당연하다. 사람들 많은 곳에 나서거나 여기 저기 돌아다닌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여긴다.

남아공월드컵 멤버 김남일(톰 톰스크), 싱가포르 프로리그 홈 유나이티드의 이임생 감독 아래서 뛰고 있는 안효연(32), 동갑내기 정경호(강원FC)가 오랜 ‘절친’이다.

2002한일월드컵 후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안효연이 ‘심심하다. 보고 싶다’고 문자를 날리면 냉큼 달려오는 의리파기도 하다.

안효연을 통해 김남일과 친해지면서 현재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김 모 사장, 운동을 그만두고 사업 중인 K씨와 함께 이른바 축구계의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됐다. 박지성이 13년 지기 정경호를 이들에게 소개시켜 주면서 그룹이 6명으로 늘었다.

박지성에게는 이들이 영국에 있을 때도 1주일에 1∼2번씩은 전화 통화로 안부를 전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활력소 같은 존재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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