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젠 선택 아닌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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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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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구단들 너도나도 프로그램 도입
“얘기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 안정 효과”

수도권 구단의 한 포수는 몇 년 전부터 불면증을 달고 산다. 자신이 요구한 공이 빌미가 돼 팀이 진 날이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처음엔 수면제 한두 알이면 잠을 이룰 수 있었지만 요즘은 점점 양이 늘어나 걱정이다.

지방 구단의 한 신인급 투수는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투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며칠 동안 기분이 언짢다. 더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이상하게 몸은 더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많은 선수가 술로 이 같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요즘 각 구단은 앞 다퉈 스포츠 심리 전문가를 초빙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프로야구도 이제는 심리전이 필수인 시대가 온 것이다.

○ KIA의 10번째 우승에도 기여

미국과 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선수가 스포츠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37)도 LA 다저스 시절 동료 투수 케빈 브라운의 소개로 만난 하비 도프먼 박사와 1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골프와 양궁, 사격 등 멘털이 중요한 종목의 선수들은 오래전부터 스포츠 심리학자를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찾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양궁과 사격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해준다. 한때 슬럼프에 빠졌던 여자 골퍼 최나연(23·SK텔레콤)도 “심리 상담을 통해 너무 평범하지만 잊고 있던 비방을 전수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처음 심리 상담을 도입한 KIA도 톡톡히 효과를 봤다. KIA는 지난해 10년 만에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는데 심리 상담을 통해 안정감을 찾은 신진급 선수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따라 KIA는 올해 1군 주전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고 있다.

매년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두산도 올해부터 심리 상담을 시행하고 있다. 김선우와 임재철 등 고참 선수들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두 차례 심리 전문가가 구장을 방문해 상담을 해준다. LG는 지난해부터 중앙대병원 한덕현 박사를 초빙하고 있고, 삼성 선수들도 몇 년 전부터 필요할 때마다 경북대 김진구 교수에게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

프로그램 도입 초기 구단 대부분이 선수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정신과 치료 아니냐” “우리가 돌아이냐” 등등의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상담을 한 선수들 사이에서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고 한다.

KIA와 두산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박미경 스포츠메디슨코리아 스포츠심리팀장은 “승부의 세계에 사는 선수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를 해소할 공간이 마땅히 없다. 이들은 그저 편하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안정을 느낀다. 이른바 정화작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자신의 얘기를 할 때는 타인 앞에서 옷을 벗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선수가 있지만 한 번 편하게 말을 하면 야구 얘기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사랑 얘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대화 속에서 자신이 몰랐던 장점을 부각시켜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거나 운영한 적이 없는 구단은 최강팀 SK다. 하지만 SK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 캠프와 마무리 캠프 때 매일 1시간씩 선수들을 상대로 정신 교육을 시킨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풀어내는 김 감독의 정신 교육은 그 자체로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는 게 구단 측 설명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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