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④문경은] 김현준 선배는 내 농구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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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7시 00분


고인의 코트 열정 지금도 생생해

故 김현준·문경은(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故 김현준·문경은(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1986년 광신중학교 체육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삼성전자 김현준 선배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모교를 찾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던 전설 같은 선배는 트레이닝복과 유니폼, 농구공, 농구화를 가득 챙겨왔다. 선물 꾸러미를 풀던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김현준의 이름이 선명한 국가대표 유니폼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한 학생이 유니폼을 차지했다. 가슴에 빛나는 태극마크, 등 뒤에 새겨진 이름 김현준이 가슴으로 전해지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 순간 “꼭 김현준 같은 국가대표 슈터가 되자”고 결심했던 소년은 광신상고, 연세대, 삼성전자, 국가대표까지 김현준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랐다. 영원히 잊지 못하는 1999년 10월 1일 그날 아침까지.

어느새 마흔이 된 SK 나이츠 문경은은 “돌이켜보니까 현준이 형이 돌아가셨을 때가 딱 지금 제 나이네요.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까요? 멘토라는 단어로는 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아요. ‘김현준’, 지금 불러 봐도 가슴 벅찬 제 전부요. 제 전부인걸요”라고 말했다.

장신 슈터로 각광을 받아온 문경은을 둘러싸고 대학 입학 때와 실업 입단 때 모두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연세대 1학년 문경은을 보고 “꼭 현대전자로 입사시켜라”라는 엄명까지 내렸지만 그의 선택은 항상 김현준의 뒤였다.

문경은은 “실업 시절이기 때문에 직접 팀을 택할 수 있었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무조건 현준이 형이 있는 삼성이었죠. 아마 현준이 형이 그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지 않고 계속 삼성에 있었다면 저 역시 아직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것 같아요”라고 추억했다.

자유투를 던질 때, 3점슛을 쏠 때마다 문경은은 가슴 속에서 김현준을 느낀다. “보고 싶어요. 피나는 훈련을 해야 승부처에서 자신감 있게 3점슛을 던질 수 있다는 걸 현준이 형께 배웠습니다. 앞으로 최대한 현준이 형의 열정을 코트 위에 더 전하고 은퇴할 수 있기를 스스로 기도합니다.” 인생의 멘토를 넘어 영원한 등대, 김현준에 대한 문경은의 사부곡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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