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맞고 얼떨떨…김광현 ‘어찌 잊으리’

  • 입력 2009년 9월 17일 0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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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좌충우돌 프로 데뷔전의 추억

장충고 출신의 LG 좌완투수 이승우(21)는 2007년 2차지명 3라운드에 지명돼 프로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2년간 2군에서만 기량을 연마하던 그가 1군 마운드에 처음 오른 건 8월 16일 잠실 롯데전. 그러나 그는 경기 개시 후 스트라이크 없이 볼만 연속 6개를 던졌다. 그리고 3번까지 연속 3개의 볼넷으로 무사만루에 몰렸다. 이대호와 가르시아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6번 정보명과 7번 김민성에게 밀어내기 사구와 볼넷, 8번 박종윤에게 중전적시타를 허용하며 0.2이닝 1안타 5사사구 4실점을 기록한 채 강판당했다.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거쳐가야하는 데뷔전. 특히 9월은 확대 엔트리로 인해 투수든, 타자든 많은 신인들이 데뷔전을 치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15일까지 올 시즌에 처음 1군 마운드에 선 투수는 30명, 타자는 22명이다. 총 52명의 선수가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의외로 데뷔전부터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며 강인한 인상을 남기는 신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승우처럼 좌충우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첫 경험은 좋든 싫든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 속에 남는다.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이승우는 데뷔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딴 세상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마운드에 섰는데 포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판이 어떻게 판정하는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그날은 롯데전이어서 잠실구장에 2만2072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해왔고, 2군에서도 숱하게 마운드에 섰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야구와는 다른 야구였다. 그는 “다른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3회쯤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KIA 신인 안치홍은 고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1군 무대에 섰다. 4월 4일 개막전. 8회 볼넷으로 나간 이재주의 대주자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사실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주자로 나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루를 밟고 있는데 발이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고교 때 전국무대 결승전도 치러봤고, 청소년대표로 세계무대에도 서면서 큰 경기를 많이 뛰어 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야구를 한 뒤 그렇게 떨린 적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선수는 데뷔전을 이렇게 기억한다.

○돌발변수로 반전기회 잡은 데뷔전

데뷔전은 누구나 떨리게 마련. 그런데 의외의 돌출상황이 발생하면서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르는 선수도 있다.

히어로즈 김수경은 1998년 4월 17일 현대 유니폼을 입고 쌍방울전에 나서 6.1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는 “누구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1회 쌍방울 1번타자를 상대로 볼카운트 2-3에서 공을 던졌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볼이었는데 심판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 이후 두 번째 타자, 세 번째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너무 떨어서 잘못 본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 심판이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올 시즌 5월 2일 사직 롯데전에서 5이닝 2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데뷔전에서 승리를 챙긴 두산 홍상삼은 “사직구장 1루쪽 외야 불펜에서 몸을 풀기 위해 공을 던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명이 나가는 바람에 그라운드에 나가서 몸을 풀어야했다. 데뷔전이라 떨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많은 관중 앞에서 몸을 풀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꼬이는 데뷔전, 풀리는 데뷔전

SK 김광현은 2007년 4월 10일 문학 삼성전이 데뷔전이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선발등판해 1회 심정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0-0으로 맞선 4회 양준혁에게 비거리 125m짜리 대형홈런을 맞은 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안산공고 시절 3년간 단 1개의 홈런도 맞지 않았던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4이닝 8안타 3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와야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비오는 날 더 잘 던졌다”는 징크스도 프로 데뷔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1970-80년대 최고투수 롯데 최동원도 83년 4월 3일 구덕 삼미전에 구원등판해 2.1이닝 1홈런 포함 5안타 2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데뷔전에서 호성적을 올린 선수도 있다. 한화 송진우는 1989년 4월 12일 대전 롯데전에서 4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 류현진은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 7.1이닝 3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히어로즈 조용준은 2002년 현대에 입단한 뒤 데뷔 후 18연속이닝 무실점으로 종전 OB 박노준(1986년)의 데뷔 16.1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을 깨기도 했다. 삼성 양준혁은 93년 4월 10일 대구 쌍방울전에서 6타수 3안타 2타점, 이승엽은 95년 4월 15일 잠실 LG전에서 9회 류중일 대타로 나서 김용수에게 중전안타를 뽑아냈다.

98년 롯데 조경환, 2001년 두산 송원국, 2002년 롯데 허일상은 데뷔전 첫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송원국은 ‘데뷔 첫 타석 대타 초구 역전 결승 만루홈런’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이듬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무대를 떠나야만 했다.

○현역 감독들의 혹독한 프로선수 데뷔기

현역 8개구단 감독 중 선수로서 한국 프로야구 무대 데뷔전을 치른 감독은 5명이다. LG 김재박(55), 히어로즈 김시진(51), 두산 김경문(51), KIA 조범현(49), 삼성 선동열(46) 감독.

김재박은 1982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뒤 9월말 28세의 뒤늦은 나이에 MBC 유니폼을 입었다. 10월 2일 대구 삼성전이 프로데뷔전. 삼성 선발 이선희를 상대로 삼진 2개를 포함, 4연타석 무안타를 기록했다. 첫해 3경기에서 총 13연타석 무안타. 단 3경기였지만 1977년 실업야구(한국화장품) 사상 초유의 7관왕에 오른 ‘천하의 김재박’이 안타를 치지 못한 것은 다음해 개막 때까지 화제가 됐다. 83년 4월 3일 잠실 OB와의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치면서 데뷔 후 18연타석 무안타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고투수로 성장한 선동열은 1985년 7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삼성 재일교포 김일융과의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7회까지 무실점 대결이었으나 8회에만 5안타 2볼넷 5실점, 프로통산 40패(146승)의 첫패를 당했다. 김시진은 군복무를 마친 뒤 1983년 5월 3일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 삼미전에 처음 마운드에 섰다. 양일환 성낙수에 이어 0-2로 뒤진 8회 1사후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볼넷-2루타-안타-희생플라이를 맞았고, 9회까지 1.2이닝 3안타 1볼넷 2탈삼진 3실점 2자책점으로 부진했다.

조범현은 82년 OB의 개막전인 3월 28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MBC전에 8번타자 겸 포수로 선발출장해 박철순과 호흡을 맞추며 9-2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타석에서는 첫 타석 삼진을 시작으로 2루수플라이-유격수플라이-3루수플라이 등 4타수 무안타로 물러났다. 김경문은 82년 3월 31일 구덕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선발출장한 조범현 대신 8회말 대수비로 나서 타석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포수로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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