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브레이크] 벼랑끝 치닫는 협회-연맹 ‘진흙탕 싸움’

  • 입력 2009년 8월 21일 09시 20분


‘꼴불견 축구행정’ 4강신화 무색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한국축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박지성의 해외진출 등 한국축구는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유독 제자리걸음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축구행정’이다. 낙제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A매치 일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보면 과연 한국이 월드컵 4강국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국축구의 중병 진단서’를 떼야할 판에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양측의 꼴불견 현장을 살펴본다.

○진실게임… 수사기관에 의뢰?

9월5일(호주)과 10월10일(세네갈)로 예정된 대표팀 평가전이 문제의 발단이다. 연맹은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면 9월과 10월 A매치 데이(9/5-9, 10/10-14) 가운데 주말에 K리그를 개최하고 평가전은 주중인 9월9일(수)과 10월14일(수)에 치르기로 합의했다’며 일정변경을 요청했다. 협회에 접수시킨 문서도 공개했다(문서번호 한·프 제 2009-109호 2009 K리그, 컵 대회 경기일정). 이에 협회는 20일 “9-10월에 월드컵 아시아 예선 플레이오프를 치를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협회가 9월6일과 10월11일에 K리그 경기 개최를 합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A매치 데이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3-4년 전에 미리 잡는 일정이다. 이 기간에는 대표팀 일정이 최우선이다. 그런데도 연맹이 K리그 일정을 잡았다. 누가 봐도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최소한 협회의 용인이 있었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한쪽은 문서를 접수했다고 하고, 또 다른 쪽은 안 받았다고 하니, 누군가 고발을 해서 직무유기를 가려야할 판이다. 둘 중 한쪽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을까.

○협회가 양보 했다고?

협회는 20일 보도자료에서 유독 ‘양보’와 ‘배려’를 강조했다. A매치 데이라는 고유 권리조차 양보해가며 K리그를 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단적인 예를 보자. 선수차출 규정엔 월드컵 본선에 나갈 경우 당해연도 1,2월에 한해 대표팀은 3주간의 훈련기간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축구선진국엔 어림없는 규정이다. 이는 곧 K리그의 희생이다. 이런 ‘로컬룰’이 적용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A매치 데이의 양보도 이런 환경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형님인 협회가 동생인 연맹에 양보만 했다고 우긴다면 몰염치에 다름 아니다. 월드컵 4강은 K리그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연맹이 큰소리친다?

연맹도 별로 할말은 없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사상 초유의 ‘선수차출 거부’를 들고 나왔다. 같이 망하자는 소리다. A매치를 겨우 20여일 남겨둔 가운데 일정 변경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초 강수를 둔 배경이 의문스럽다. 아울러 애초에 A매치 데이를 피해 K리그 일정을 잡았으면 아무런 잡음이 없지 않았을까. 큰 소리 못 칠 이유는 또 있다. 연맹은 FC서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간 친선전을 위해 팬과의 약속을 어긴 원죄가 있다. 올 시즌 K리그 일정도 엉망이다. 현장의 불만이 가득하다. 타이틀스폰서도 못 잡고, 행정도 신뢰를 주지 못하는 연맹이 협회를 상대로 면피하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양측 회장의 감정싸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조중연 축구협회장과 곽정환 연맹회장의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양측은 그동안 스포츠토토 수익금 배분 문제나 연맹의 법인화 문제로 감정이 뒤틀렸고, 특히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총회의 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협회는 셰이크 살만 바레인 축구협회장을 지지한 반면 연맹의 곽 회장은 반대쪽인 빈 함맘 AFC회장의 편에 섰다. 감정싸움의 발단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사태 해결을 위해 두 회장은 2차례 회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엇박자가 났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회장끼리도 해결 못한 사안을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파국은 볼을 보듯 뻔하다. 한국축구가 휘청대면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간다. 협회와 연맹은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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