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000m 고산에서 이런 밥상 받아볼줄은…

  • 입력 2009년 4월 28일 16시 12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에서는 입맛을 잃기 쉽다. 고소 증세로 몸이 나른할 뿐 아니라 낮에는 영상 20도 이상 오르고 밤에는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는 극심한 일교차 때문에 제 컨디션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8000m가 넘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 잘 먹는 게 원정 성공의 열쇠이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도 식단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최근 사흘간 먹거리는 이랬다. 첫 날 아침은 조기구이에 김칫국, 점심은 어묵과 버섯을 곁들인 우동, 저녁은 족발과 닭볶음탕. 다음 날 아침은 간장게장에 북어국, 점심은 잔치국수, 저녁은 카레. 셋째 날 아침은 김치소고기국과 고기볶음고추장, 점심은 베트남 쌀국수, 저녁은 닭곰탕과 닭가슴살 겨자냉채….

밑반찬으로 나오는 명란젓, 창란젓, 낙지젓은 입 속에 침이 돌게 하고, 힘든 등반 작업 뒤에는 홍어회나 홍어애탕, 동태찜, 탕수육 등의 특식이 나오기도 한다. 5000m가 넘는 곳에서 차려지는 밥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식량을 담당하고 있는 신동민 대원(35)은 "대원들이 입맛과 컨디션을 잃지 않게 식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며 "음식 종류는 50가지가 넘는다"고 말했다.

홍어, 조기, 동태 등은 드라이아이스를 넣은 아이스박스에 밀봉해 한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각종 양념도 한국산으로 챙겼다. 하지만 기압이 평지의 절반인 고산에서의 조리가 쉽지만은 않다. 신 대원은 "베이스캠프에서는 물이 60~70도 밖에 끓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압력솥을 이용해 밥을 짓고 면을 삶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못해먹는 음식도 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바비큐 등 직화구이를 해먹을 수 있지만 남체 바자르(3440m) 이상 높이에서는 음식을 불에 직접 구워먹을 수 없다. 직화 요리를 할 경우 셰르파들은 "불길한 일이 생긴다"며 산에 오르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베이스캠프에서 숯불구이는 고사하고 쥐포와 오징어도 프라이팬에 구워 먹어야 했다. 또 네팔인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한국 원정대들도 통상 개고기를 가져오지 않는다.

베이스캠프에서 배부르게 먹었던 대원들이라도 전진 베이스캠프인 캠프2(6500m)를 벗어나면 허기를 느끼게 된다. 보통 캠프2까지만 조리 기구를 가져가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기 때문이다. 캠프3(7300m) 이상에서는 알파미(건조 쌀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거나, 컵라면, 비스킷, 초콜릿바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박영석 원정대는 제과점에 주문해 맞춘 손바닥만한 고열량 초코칩 쿠키 50개를 한국에서 가져왔다. 마라톤처럼 고산 등정에도 특별 행동식이 있는 셈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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