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WBC 다이어리] 사연 많은 그들, 한국야구 기적의 역사

  • 입력 2009년 3월 11일 07시 53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 중 도쿄돔을 방문한 허구연 스포츠동아 해설위원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번쩍하고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야구 신생학교인) 안산공고에서 (김)광현이 같은 애가 나왔는지…. 그러니까 야구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돼야 해요. 춘천에서도, 전주에서도 프로야구를 개최해야 아이들도 꿈을 갖고 야구선수를 동경하게 될 거 아니요?”

어디 김광현 뿐인가요? 류현진이 고교 졸업 후 우선지명권을 가진 다른 구단의 외면을 받다가 한화에 입단한 것도, 김인식 감독을 만난 것도 천운이지요. 김광현의 입단과 SK 김성근 감독의 부임이 맞물린 것도 운명이겠죠. 신고선수 김현수, 방출선수 이종욱. 트레이드 선수 이용규, 연습생 출신 박경완, 재기선수 임창용…. 우리 선수 한명 한명의 역사는 곧 한국야구 기적의 역사입니다.

한국야구를 2대회 연속 WBC 아시아라운드 1위로 이끈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뇌경색을 극복하고 2006년 WBC 4강을 선사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를 꺾은 파란은 한국야구 100년 역사상 최대 위업으로 기억됩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전승 금메달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시드니올림픽,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까지…. 그리고 이번엔 2-14 콜드게임으로 지더니 불과 이틀 후 1-0으로 일본을 셧아웃 시켜버렸지요. 한국야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믿고 싶을 정돕니다.

야구부가 있는 고교가 전국 합쳐 50개인 나라가 4000개가 넘는 나라를 이깁니다. 야구 인프라나 행정력, 팬 층을 감안하면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한국야구는 국제전 단판승부에 강합니다. 감독의 용병술, 선수의 정신력이 어우러진 결과겠지요. 단 ‘베이징 키드’의 정신력은 선배세대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겨뤄보고 싶다는 소박한 개인적 승부욕에 가깝습니다. 일본이 한수 위라고 주눅 드는 세대가 아닙니다. ‘너 이치로야? 나 김광현이야!’란 식의 ‘최영의 세대’지요. 이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은 재미입니다. 그래서 순수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은 왜 우리 선수들은 이렇게 뭉클한 드라마를 항상 적지에서 쓸 수밖에 없을까하는 안쓰러움이었습니다. 정치가나 공무원, 그리고 야구행정가들이 ‘돔구장 없어도 알아서 이기네’란 식으로 기적을 당연시할까봐 걱정하면 기우일까요?

일본전 최고 수훈은 김인식 감독 이하 선수단입니다. 그러나 그 바탕엔 프로야구가 있습니다. 그 프로야구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돈을 댑니다. 이윤을 바라지 않고요. 적어도 대한민국 야구팬이라면 감사해야 될 입니다. 굴곡은 있을지언정 한국야구 기적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 믿습니다.

도쿄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화보]일본 스포츠신문을 통해 본 한·일전 분위기

[관련기사]봉중근 ‘이치로 봉쇄’ 비밀공개

[관련기사]임창용 “하라 생큐…번트작전 고마웠다”

[관련기사]일본전 완봉구 사수작전 ‘이에는 이’

[관련기사]“이정도면 ML 최상급” 추신수도 감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