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광객 살해범은 中고속성장의 ‘오발탄’

  • 입력 2008년 8월 12일 03시 01분


“나는 산업화 과정서 배제된 노동자”

실직 이혼후 방황하다 ‘묻지마 살인’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인 9일 베이징 한복판에서 흉기로 미국인 관광객을 살해한 뒤 자살한 탕융밍(唐永明·47) 씨는 “중국의 고속성장이 낳은 오발탄”이라고 뉴욕타임스가 10일 전했다.

탕 씨의 인생 궤적은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한 이래 걸어온 ‘초고속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총체적 사회 모순의 압축판’으로 보인다는 것.

그는 중국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 시의 한 국영 계량기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프레스 기술자. 2004년 회사가 어려워져 해고된 그는 같은 공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했지만, 공장이 대기업에 흡수되면서 이마저 잃게 됐다.

당시 공장 동료들은 “그가 실직한 뒤 자신을 ‘국가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배제된 노동자’로 칭하며 불만을 자주 늘어놨다”고 말했다.

마땅한 일거리 없이 집 주변만 배회하던 그는 의처증 증세를 보이며 아내와 자주 다투다 2년 전 이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가지 못했던 외아들마저 절도죄로 감옥에 갔다.

그때부터 살던 집을 팔고 단칸방으로 옮겨와 하루 종일 방에서 지냈다. 옆집 주민 왕모(51) 씨는 “그가 황당한 이유로 자주 시비를 걸었다”고 전했다.

오랜 방황 끝에 올해 5월 쓰촨(四川) 성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갔다가 대형 지진참사로 다시 항저우로 돌아왔다.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 그는 1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업을 찾아)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

직장을 잃은 노동자가 끝내 새 직장을 찾지 못하고 가정은 파탄 난 채 결국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탕 씨의 삶은 압축성장이 가져온 결정판으로 보인다는 게 인권단체 분석이다.

홍콩의 인권단체인 중국인권민주화뉴스센터는 “그가 민원을 중앙기관에 알리기 위해 여러 차례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밝혀 이번 사건이 사회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시사했다.

한편 중국 당국도 범행 동기가 사회 불만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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