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개막 5일전 첫 공동입장 합의… 옷 180벌 구하느라 법석

  • 입력 2008년 8월 4일 03시 02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공동 기수를 맡은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의 정은순(앞줄 오른쪽)과 북한 유도대표팀 박정철 감독을 앞세운 채 공동 입장하고 있는 남북 선수단.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공동 기수를 맡은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의 정은순(앞줄 오른쪽)과 북한 유도대표팀 박정철 감독을 앞세운 채 공동 입장하고 있는 남북 선수단.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북 단복에 얽힌 뒷얘기

2000년 9월 10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제111차 IOC 총회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함께 입장한다고 발표했다. 역사적인 첫 남북 공동 입장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길었던 합의 과정을 통해 남북은 짙은 청색 상의, 베이지색 하의로 단복을 통일하기로 했다. 발표 당시 남북은 각기 다른 단복을 입고 이미 시드니에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개막이 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새 옷을 맞출 겨를이 없었다. 남북한의 단복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직원들이 시드니에 있는 백화점과 옷가게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남북 각 90명씩 180명에게 입힐 똑같은 옷은 많지 않았다. ‘비슷한 색깔’의 옷도 눈에 띄는 대로 살 수밖에 없었다.

개회식 전날이 돼서야 단복 수량을 맞췄다. 기성복이 많았던 만큼 사이즈를 맞추기는 불가능했다. 한국의 정은순(농구)과 공동 기수를 맡았던 북한 유도대표팀 박정철 감독 단복의 팔 길이가 짧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시드니에서 선수 지원을 맡았던 KOC의 한 간부는 “옷의 브랜드가 다르면 같은 색 옷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 입장할 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색깔이 조금씩 다른 단복이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 상황은 정말 급박했다”고 말했다. 2004년 아테네 대회 때는 일찌감치 남북 공동 입장을 확정했기 때문에 미리 단복을 준비해서 현지로 갔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이 꼭 4일 남았다. 하지만 8년 전처럼 같은 색 옷을 사기 위해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닐 일은 없을 것 같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급속히 냉각된 남북 관계는 베이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행 선수단장은 “개막 직전까지 공동 입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연락조차 거부하는 상황이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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