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러시아 혁명’… 조국 네덜란드 꺾고 4강 이끌어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법사’는 코치와 어깨동무를 하고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조국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는 미안함보다는 강호를 꺾었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자신의 아이들’을 포옹하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2002 한일 월드컵 한국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62) 감독. 그는 22일 스위스 바젤의 상크트 야코프파크에서 열린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 8강전에서 러시아를 이끌고 조국 네덜란드를 3-1로 제압하는 ‘마술’을 부려 세계 축구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경기 전 “조국에 반역자가 되고 싶다. 내가 반역자가 된다는 것은 러시아가 네덜란드를 꺾는 것”이라고 했던 히딩크 감독. 역시 그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조국의 대표팀 사령탑까지 지냈지만 이날 네덜란드는 무찔러야 하는 적일 뿐이었다.


골잡이 로만 파블류첸코를 최전방에 세우고 안드레이 아르샤빈(사진)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내세우는 4-4-2 포메이션으로 나선 러시아는 예상을 깨고 경기 초반부터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미드필드부터의 적극적인 압박, 공수를 넘나드는 선수들의 ‘벌떼 축구’, 그리고 연장까지 가는 접전에도 지칠 줄 모르는 선수들의 강철 체력은 6년 전 한국의 ‘4강 신화’를 연상케 했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로 6년 전 박지성이 국민 스타로 떴듯 이날 아르샤빈도 러시아의 영웅으로 도약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좌우 공격수로 뛰는 아르샤빈은 이날 연장까지 120분을 뛰고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워 네덜란드의 골문을 줄기차게 공략했다.

아르샤빈은 1-1이던 연장 후반 7분 왼쪽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려 드미트리 토르빈스키의 결승골을 연출했다. 아르샤빈은 네덜란드 수비가 넋을 놓고 있던 연장 후반 11분 스로인 패스를 받아 골 지역 오른쪽을 파고들며 오른발 슈팅을 날려 쐐기 골을 뽑았다.

히딩크 감독은 “어떤 거창한 말도 필요 없다. 이건 기적에 가깝다. 오늘 우리는 아주 굉장하고 믿어지지 않는 일을 해냈다. 축구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것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흥분했다. 그는 “전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우리가 네덜란드보다 나았다.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했다”고 말했다.

승리의 주역 아르샤빈은 “네덜란드인 감독 한 명이 11명의 재능 있는 네덜란드 선수들을 물리쳤다”며 히딩크 감독을 치켜세웠다.

한편 후반 11분 파블류첸코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네덜란드는 후반 41분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헤딩 만회골로 연장에 들어갔지만 연장 후반 아르샤빈의 원맨쇼에 무너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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