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산책]북한 축구대표팀의 두 얼굴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2분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한국-북한의 경기를 취재하며 북한의 두 얼굴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자란 총련계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와 안영학(수원 삼성)은 김정훈 감독 등 다른 북한 선수단과는 딴판이었다.

까까머리에 강인한 인상, 저돌적인 플레이로 ‘북한판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불리는 정대세는 한국 기자들을 거리낌 없이 대했다. 24일 상하이 훙차오공항으로 입국할 때 수십 명의 한국 기자가 몰려들어 질문하자 “나를 취재하려고 이렇게 많이 왔느냐. 정말 깜짝 놀랐다”며 스스럼없이 모든 질문에 답했다. 아버지가 한국 출신인 그는 국적 문제에 대해 “아주 곤란한 질문이다”라며 망설이다가도 “나를 키워준 곳은 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6일 경기가 끝난 뒤 훙커우스타디움 공동취재구역에서도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영학도 한국 기자를 만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공항에서나 경기가 끝난 뒤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둘을 제외한 다른 선수나 코칭스태프는 달랐다.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질문을 던지면 “일 없시오. 됐시오”라며 자리를 피했다. 김정훈 감독은 26일 경기가 끝난 뒤 공식 인터뷰에서 대답한 게 유일했다. 인터뷰 중 “이젠 됐다.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북한 단장인 송광호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등 일부 인사는 정대세와 안영학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했다. 경기 전날 훈련이 끝나고 한국 기자들이 이들을 만나자 송 단장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일일이 체크했고 메모까지 했다.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그라운드에서 라커룸으로 갈 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장소)에서도 줄곧 따라다녔다.

북한이 직영하는 상하이 평양관 직원들은 3년을 주기로 근무지를 바꾼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친밀해지기 전에 바꾸는 것이란다.

10만 홈 팬의 열광적인 응원 등 홈 어드밴티지를 포기하며 상하이에서 경기를 치른 북한. 이들의 닫힌 마음이 언제쯤 열릴지, 0-0으로 끝난 스코어만큼이나 답답한 취재였다.

<상하이에서>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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