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산책]세계 최고를 만드는 건 채찍 아닌 유쾌한 열정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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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유쾌한 친구들을 만났다. 스노보드 제조로 유명한 버튼이라는 회사의 ‘스노보드 글로벌 팀’ 팀원들인데 보드 세계 1인자인 숀 화이트(21·미국)를 비롯해 제러미 존스(31·미국), 니콜라스 뮐러(25·스위스), 트레버 앤드루(27·캐나다) 등 이른바 ‘엑스게임’으로 불리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장발에 찢어진 청바지, 금속 목걸이, 검은색 선글라스에 삐딱하게 눌러 쓴 야구 모자 등 차림새는 불량스러워 보였지만 이들의 말은 한 번쯤 귀담아 들을 만했다.

“재미있어 시작했고 지금도 재밌으니까 한다.”(화이트)

“보드는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나에게 보드를 타는 것은 명상이고 자유다.”(뮐러)

“보드에는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라는 것이 없다. 자신의 스타일을 추구하면 된다.”(존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내가 사랑하는 것,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뿐이다.”(앤드루)

들어 보니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1등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꾸는 일이었다. 재미였다. 그것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1등이 됐고 부와 명성도 따라 온 셈이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로 눈을 돌려 보자. 자신만의 스타일? 재미? 이건 딴 나라 얘기다. ‘성적 지상주의’ 구호 아래 이런 건 한참 뒷전이다. 한국 운동선수의 평균 훈련량은 다른 나라 선수들의 몇 배에 이른다. 한국에서 운동선수의 길은 고통과 고난의 여정이다. 학업도, 학교 생활도 포기하고 오로지 운동에만 매달린다. 그런데도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크기만 하다. 주변에선 ‘더 노력하라’고 하고 ‘정신력이 글러 먹었다’ 한다.

내친김에 나라에서 국고로 지원해 세계적인 엑스게임 선수를 양성해 보면 어떨까. 이를수록 좋을 테니 초등학교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10년 장기 프로그램이 좋겠다. 하지만 성공은 보장 못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도록 해야 하니 뭐든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놔 둬야 할 것이고 결국 이 친구들이 보드 선수가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적어도 이들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가지는 않을까.

한국 육상에서 남자 100m 기록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마라톤도 뒷걸음이다. 축구도 지지부진하다. 선수들을 비난하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 보라. 과연 나에게는 열정이 있는가라고.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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