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빙판의 꿈, 두고올 수 없었시요”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7시 49분


혈혈단신으로 북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김영찬씨가 29일 목동실내링크에서 연세대 팀훈련 중 슈팅을 하고 있다.김동주기자
혈혈단신으로 북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김영찬씨가 29일 목동실내링크에서 연세대 팀훈련 중 슈팅을 하고 있다.김동주기자
북에서 이루지 못한 ‘빙판의 꿈’을 남에서 이룬다.

주인공은 올해 초 중국을 거쳐 입국한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김영찬씨(가명·23). 연세대 사회과학계열에 특례입학이 확정돼 내년도 신입생으로 입학할 예정인 김씨는 지금 연세대 아이스하키팀에서 ‘연습생’으로 뛰며 빙판의 꿈을 키우고 있다.

탈북자인 그가 스틱을 다시 잡은 것은 아이스하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 함경북도 출신인 그는 중학교에 다니던 90년 말부터 ○○구락부에 속해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다. 소년부에선 라이트 디펜스, 청년부에선 라이트 윙으로 활약했다. 비록 장비는 허름했지만 얼음을 지치며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복잡한 가정 사정 때문에 7년 전 아이스하키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올 초 북한을 탈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창춘(長春)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도착한 그는 우연히 TV에서 아이스하키 경기 중계를 봤다. 그러자 잊고 있었던 아이스하키에 대한 욕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내가 다시 빙판 위에 설 수 있다면….” 그때부터 김씨는 아이스하키 중계 프로그램만 찾았고 최근 서울 목동실내링크에서 열린 강원도컵 코리아리그 때는 경기장까지 찾아갔다.

이달 들어 연세대 특례입학이 확정되자 김씨는 학교에서 아이스하키 선수의 꿈을 이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는 이성철 체육부장(체육과 교수)과 면접하는 자리에서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연세대 아이스하키팀 윤성엽 감독은 흔쾌히 승낙했다.

27일 김씨는 꿈에도 그리던 빙판 위에 다시 섰다. 사흘 동안 목동링크에서 팀훈련을 소화한 김씨는 “7년 만에 다시 스케이트를 신으니 너무 기쁘다. 운동을 오래 쉰 탓인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내 실력이 많이 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키 1m70에 몸무게가 겨우 58㎏. 탈북 과정에서 몸무게가 7㎏이나 빠졌다는 것. 윤성엽 감독은 “벗은 몸을 보니 정말 왜소하더라.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안 해서 아직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상태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로 아이스하키를 원하는 데다 훈련도 열심히 따라 하기 때문에 내년 시즌부터 선수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족들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는 더욱 아이스하키에 매달린다. 그에겐 지금 한 가지 꿈이 있다. 언젠가 북의 가족들과 재회하는 날, 남한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어 있겠다는 것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걱정하는 김영찬씨의 요청으로 본명과 출신학교, 가족관계 등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