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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9월 1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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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부터 거의 10년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프로복싱이 IMF시대를 맞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기폭제는 단연 조인주(29·풍산체). 조인주는 지난달 29일 한국복서를 14명이나 무릎 꿇린 필리핀의 강타자 페날로사를 판정으로 누르고 WBC슈퍼플라이급 챔프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수년여만에 WBA슈퍼페더급 챔피언 최용수(26·극동서부체)와 함께 두명의 챔피언 보유국이 됐다.
그 뿐인가. 다음달엔 이태길이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인 태국의 피칫 초 시리왓에게 도전하기 위해 태국 원정에 나선다. 또 조영주 장영순 이승구 이상철 등도 올해 안에 챔피언 도전을 추진하고 있다.
IMF시대 조인주의 챔프 등극 과정은 보릿고개 시대 한국 최초의 챔피언 김기수의 그것과 흡사하다. 김기수는 66년 6월25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매치 15회전에서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간발의 점수차로 누르고 극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유신 어둠의 시대 70년대엔 홍수환의 불같은 ‘저항의 주먹’이 국민의 노한 마음을 달래줬다.
홍수환은77년11월27일WBA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파나마의 ‘지옥에서 온 사자’ 카라스키야를 4전5기 끝에 지옥으로 되돌려 보냈다.
82년 4월엔 프로야구가 출발했고 그 이듬해엔 세미프로축구 슈퍼리그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후 장정구와 유명우가 고군분투했지만 한국 프로복싱은 조금씩 활기를 잃어 갔다. 급기야 소득 1만달러 시대가 들먹여지던 96년쯤엔 프로복싱은 ‘3D운동’ ‘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가 됐다.
IMF체제의 98년. 왜 프로복싱은 다시 뜨는가. ‘헝그리 정신의 부활’인가. 아니면 ‘추억의 되새김’인가.
〈김화성기자〉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