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깊어질수록 「스포츠신드롬」 확산

  • 입력 1997년 11월 24일 20시 09분


스포츠신드롬은 불황과 비례하는가. 불황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스포츠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관심이 되레 확산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학교 가정뿐 아니라 직장에서까지 보편화하는 추세. 사람들의 화제도 경제나 대선 얘기는 아예 뒷전이다. 혹시 누가 그런 얘기를 꺼낼라 치면 모두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요즘의 단골메뉴는 박찬호가 번 어마어마한 돈, 월드컵축구와 골프 얘기. 아예 동호인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직접 운동에 나서는 직장인들도 많다. 최근 경기 광명체육관에서 사내 농구대회를 연 한화유통이 그 예. 이날 참가한 12개 팀은 모두가 올 봄부터 생겨난 자생적 팀들. 20,30대 사원들이 주축이며 비용은 회비로 충당된다. 이달초 중계동 마들 근린공원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한 미도파도 마찬가지. 지난 9월 월드컵축구 예선대회기간에 무려 16개 팀이 한꺼번에 생겼다. 한화유통과는 달리 40,50대들이 많다는 게 특징. 한화유통의 박승희(35)과장은 『요즘 회사원들은 불황이다 명퇴다해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며 『이럴 때 운동에 열중하다보면 「아 내가 살아 있구나」하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몇달간 선동렬 박찬호 월드컵축구예선 경기 등 TV 보는 재미로 살았다는 회사원 김중근(37)씨는 『요즘 정치고 경제고 제대로 되는게 있느냐』라고 물은 뒤 『TV에서 박찬호나 월드컵축구를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라도 없으면 살 재미가 없다』고 털어놨다. 중고교생들을 중심으로 한 10대들의 스포츠신드롬은 절정에 이른 느낌. 박찬호 사인회에 몰린 학생, 젊은 여성인파들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프로농구(NBA)를 모르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되는 것은 이미 오래.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NBA의 웬만한 스타들의 신상명세를 꿰고 있을 정도다. 나라전체가 부도날 위기에 처한 요즘. 왜 사람들은 굳이 스포츠에 탐닉할까. 한양대 이도흠(국문학)교수는『원칙대로 살면 손해보는 데서 오는 무력감, 아무리 노력해도 집하나살수없는 절망감이 쌓여 허무감으로 자리잡았고 이를 풀기 위해 스포츠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A사에 다니는 K모(31)씨는 『중남미의 국민들이 경제는 엉망인데도 축구에 열광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엔 그 심정을 알 것 같다』며 『적어도 스포츠는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김화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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