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 집회’ 골머리… “1만명” 신고해 도로 막았더니 70명 모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5일 18시 31분


코멘트
20일 오후 2시경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북문 앞 한강대로 편도 2개 차로가 집회 참가자 없이 텅 빈 채 점거돼 있다. 이날 보수성향 단체 신자유연대는 오후 3∼5시 집회 개최를 위해 오후 12시부터 이곳을 점거한 뒤 오후 2시경 무대 설치를 마쳤다. 집회 참가 인원은 1만 명 규모로 신고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지켜본 결과 실제 집회 참가자는 경찰 추산 7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이 참가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북문 앞 한강대로. 보수성향 단체 신자유연대가 참가자 1만 명 규모로 신고해 점거해놓은 편도 2개 차로가 텅빈 채 방치돼 있었다. 나머지 편도 3개 차로에선 차량 정체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 참가 인원은 경찰 추산 70명(주최 측 추산 200명)이었지만 실제 참가자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신고 인원의 1%도 채우지 못한 집회 때문에 1시간 가량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봄철을 맞아 각종 단체의 집회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집회 인원과 시간을 실제보다 크게 차이 나게 신고하는 집회 사례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다보니 제재할 방법도 없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고의성이 인정되는 뻥튀기 집회의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텅빈 거리에 시민 불편만 가중돼

이날 신자유연대 집회는 같은 날 오후 3시경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가 중구 숭례문에서 행진해오는 것에 맞불을 놓기 위해 열렸다.

동아일보가 9~20일 ‘3000명 이상 참가하겠다’고 신고한 주요 집회 4곳의 현장을 취재한 결과 모두 인원과 시간이 경찰 추산 인원, 실제 집회시간보다 많이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4곳 중 2곳(전국민중행동·신자유연대)은 경찰 추산은 물론 주최 측 추산마저 신고 인원보다 적었다. 민노총 금속노조 집회는 무대 설치 등을 이유로 본 집회 시간보다 4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열겠다고 신고하고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 편도 3개 차로를 사용했다. 평일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집회로 인해 인근 버스정류장 3곳은 상당 시간 이용할 수 없었다. 주부 김모 씨(56)는 “경기 고양시 일산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떡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앞서 전국민중행동은 9일 오후 3시경부터 1시간 반가량 집회를 열고 중구 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 편도 전차로를 점거했다. 집회 신고 인원은 5000명 규모였지만 경찰 추산 700명(주최 측 추산 2000명) 만 참석했다. 오전 10시부터 집회를 신고해 오전 11시 반경 무대 설치가 끝난 뒤 본 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3시간 넘게 이곳 도로는 텅빈 채 방치됐다.

대학생 이모 씨(24)는 “도로가 계속 비어 있길래 의아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2시 반경 인근 차로를 지나는 차량의 통행 속도는 시속 7~9km에 그쳤다.

● 전문가들 “고의성 있으면 과태료 부과해야”

집회 단체들은 당일 참가 인원을 추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고 인원이 많을 뿐 집회의 자유 내에서 허용된 권리라고 주장했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지 않느냐”며 “국내에서 개최하는 집회는 신고제이며 허가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도 “부풀려서 신고하진 않는다. 조직 점검을 통해 예상한 만큼의 신고 인원을 내는데 사정상 못 오거나 더 오는 조직원도 있는 것”이라며 “무대 설치에 몇 시간이 걸릴지도 예측 못하기에 안정적 진행을 위해 시간도 여유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집회 신고 단체의 과거 집회 전력 등을 토대로 실제 인원을 예측해 도로 통제 등을 집행하지만 현실적으로 ‘뻥튀기 신고’를 막을 방법은 없다. 헌법 21조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에 집회 및 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에 따라 국내 집회 신고는 미국 등과 달리 준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된다.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에 따르면, 통제 차로 등을 줄이는 제한은 반드시 서면으로 집회 주최자 또는 연락책임자에게 송달해야 한다”며 “참가 인원이 적어도 집회나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이를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고의적인 허위 신고 집회에 대해선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부득이하게 애초 신고한 규모보다 실제 집회에 적게 참가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무조건 제재하는 규정을 둘 순 없다”면서도 “참가 인원의 50% 이하, 70% 이하 등 관련 기준을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할 경우 ‘뻥튀기’ 집회 신고로 판단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시행령이나 규칙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